서울에서 친구와 함께 살던 첫 번째 집은 달과 가까웠다. 나는 손톱달이 뜨는 날이면 집으로 가다가 잠시 멈춰 하늘을 보곤 했다. 하지만 언덕을 한참 오르다 보면 집으로 가는 길이 그 어떤 일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당시 나는 우리나라 고전과 전통을 잇는 문화사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책상에서보다 현장에서 취재하는 일이 잦았고, 때문에 하루 종일 이곳저곳 다녀서 밤에 집에 갈 때면 언덕을 오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어느 깊은 밤, 바쁘게 취재하다 끼니를 놓친 것을 깨닫고 24시간 식당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데 예전에 근무했던 잡지사의 책이 카운터에 놓여 있는 것을 봤다. 판매율이 떨어지면서 나는 “요즘 누가 이런 걸 보겠냐” 체념하듯 말하곤 했지만 막상 낡은 식당에서 그것을 발견하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자 처음 그곳에 입사했을 때가 떠올랐다. 나의 기사와 사진이 담긴 첫 책. 나는 좋아하고 존경하는 대학교 선생님께 그것을 편지와 함께 보냈다. 며칠 뒤 회사로 전화가 왔다. “곽효정 기자님 부탁합니다!” 낯익고 따뜻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 선생님이었다. 소포를 받고 직접 축하하려고 전화를 하셨던 것이다.
선생님은 지금 내가 하는 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전통문화에 무지했던 내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해주셨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지금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면서 집으로 가는 길, 길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서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전화를 하지 못한 지 오래돼 차마 전화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모든 것들이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늘 감사해요.” 잠시 후 온 답장은 나의 첫 번째 책의 사진과 ‘내 책상 위에 언제나 네 책이 있단다’라는 메시지였다.
나는 언덕 어디쯤에 잠시 멈춰 섰다. 그날은 달도 예뻤고 간혹 보이는 별도 유난히 반짝였다. 처음으로 집으로 가는 길이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곽효정(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곽효정] 선생님, 언제나 감사드려요
입력 2015-05-13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