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이성교제 눈높이 연극으로 풀어보세요… 국립극단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입력 2015-05-13 02:37
연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의 콘셉트 사진. 록산느(하윤경 분)가 연애편지를 읽으며 행복해하고 시라노(안창환 분·왼쪽)와 크리스티앙(안병찬 분)은 밧줄에 매달려 그녀를 몰래 바라보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

혹자는 청소년기를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시기라고 한다. 어른의 눈으로는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하고 반항심으로 가득한 이들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소년들 역시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성장통에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소장 최영애)는 2011년 출범 이후 청소년을 위한 연극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첫 번째 작품 ‘소년이 그랬다’를 시작으로 매년 공연되는 연극마다 호평 받고 있다. 청소년들을 훈육의 대상이 아닌 자율적 행동의 주체로 접근해 호응을 얻었다. 어른들에게도 자녀들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공연마다 매진 사례를 기록하는 한편 전국 각 지역에서 투어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올봄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9∼24일 국립극단 소극장 판)를 무대에 올렸다. 프랑스 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가 원작으로 국내에서는 프랑스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등장하는 영화 ‘시라노’로 잘 알려져 있다.

뛰어난 시인이며 용감한 검객인 시라노는 어릴 적부터 록산느를 남몰래 사랑해 왔지만 기형적으로 큰 코에 대한 콤플렉스로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록산느는 시라노와 같은 부대에서 복무하는 꽃미남 크리스티앙을 사랑하게 된다. 시라노는 크리스티앙 대신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며 두 사람 사이를 이어준다. 그러나 록산느를 짝사랑하는 귀족장교 드기슈가 질투해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을 전장으로 보내고, 크리스티앙은 결국 전쟁터에서 숨을 거둔다. 15년이 흐른 뒤 록산느는 자신이 빠져들게 된 매개체인 연애편지를 시라노가 썼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시라노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청소년의 이성교제가 빈번한 현실에서 작품은 네 사람의 서로 다른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청소년 범죄, 왕따, 임신, 가출 등을 다뤄왔던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고전을 각색한 것도 이번이 처음으로, 청소년 관객들과 호흡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엄친아’ ‘짜친다’ ‘엑스-오빠’ 등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나 유머코드가 눈에 띄지만 유치하지는 않다.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작품을 올리기 전에 청소년들을 상대로 리딩 공연 또는 워크숍 등을 열어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청소년극이라는 점을 의식한 듯 극 후반부에 교훈적인 대사가 길게 나열되는 게 다소 아쉽다. 하지만 고전을 이처럼 재미있는 청소년극으로 바꾼 작품은 당분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