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군포 엘림직업훈련학교에 다니는 탈북민들을 관리하는 게 너무 힘드네요. 박사님께서 공산주의를 연구하셨다고 들었는데 이분들을 좀 상담해주시겠어요?”
1995년 10월 경찰대학 연구관으로 일했던 나는 경기도 군포경찰서에서 일하는 한 형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 형사는 탈북민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고 바로 군포경찰서로 달려갔는데 처음으로 탈북민을 봤다. 이 한 통의 전화가 내 인생을 바꿀 줄 몰랐다.
나는 평소 주일에 출석하던 경기도 안양시 새중앙교회로 그들을 인도했다. 교회에서 탈북민을 섬기는 ‘북한선교회’를 만드는 등 북한선교 사역에 참여하면서 탈북민과 교제했다. 2001년 4월 캐나다에서 북한연구학교(North Korea Study School)를 운영하는 한국예수전도단(YWAM) 설립자 오대원(David E Ross) 목사님으로부터 강의 요청을 받았다. 강의를 하기 위해 캐나다로 가는데 비행기 안에서 북한선교에 대한 깊은 감동이 밀려와 이에 헌신하기로 순종했다. 나는 캐나다에 다녀온 후 그해 12월 예수전도단 소속 기관인 북한선교연구원을 설립했다. 북한선교연구원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북한선교 전문가와 탈북민을 만나고 북한에 대해 연구하는 활동을 했다. 본격적인 북한선교가 시작된 셈이다.
하나님은 북한선교를 통해 내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길까지 열어주셨다. 나는 목회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54세였던 2006년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그리고 많은 분들의 기도와 지원으로 2007년 7월 17일 탈북민을 섬기며 통일을 준비하는 ‘물댄동산교회’를 개척하게 하셨다. 물댄동산교회에서는 탈북민과 남한 청년들이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 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 또 북한선교전략학교 교장으로서 북한선교에 꿈을 품은 동역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통일을 준비하고 있다.
20년 동안 수많은 탈북민을 만나면서 그들의 아픈 얘기를 들으며 함께 많이 울었다. 힘든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북한과 아무 연고도 없는 내가 왜 이 사역을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로 물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백성인 고아와 과부 등을 거둬줘 너무 고맙다”고 위로해주셨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탈북민들이 복음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탈북민 사역은 ‘고난의 행군’이었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여정이었다. 예수가 내 삶의 주인이 되니 그들을 넉넉하게 품고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 탈북민 사역이 녹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넘지 못할 사역은 아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북한 사역을 위해 어떻게 일하셨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정리=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
◇약력=1953년 경남 함안 출생, 고려대 중문과 졸업, 한국학대학원 정치교육 석·박사,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졸업,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부장 역임, 북한선교전략학교 교장, ㈔새일아카데미 이사장, 서울 물댄동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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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13 0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