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기도자 생명 구한 고교생… 신변 비관해 목 맨 50代 발견 몸 들어올리고 행인에 도움 요청

입력 2015-05-12 02:01
방금 지나쳐온 공원 정자에 한 남자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바로 앞 아파트에 사는 서울 문일고 3학년 김태휘(18)군은 귀가하는 길이었다. 정자에서 멀어질수록 걸음이 무거워졌다. 발길을 돌려 언덕길을 뛰어 내려갔다. 지난 6일 오후 4시40분쯤이었다.

허공에 가늘게 그어진 녹색 빨랫줄이 정자 바로 앞까지 가서야 드러났다. 지붕 아래 들보에서 수직으로 뻗어 내려온 줄은 50대 남성의 목을 죄고 있었다. 남자는 손이 파랬다.

김군은 줄에 매달려 축 늘어진 몸을 두 팔로 안아서 들어올리고 “도와 달라”고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온 30대 남성이 다리를 들어올렸다. 줄을 잘라야 했다. 몰려온 여학생 중 한 명이 가방을 뒤져 가위를 꺼냈다. 김군은 가위로 줄을 끊고 남자를 정자 아래 의자에 눕혔다. 남자는 가늘게 숨쉴 뿐 눈을 뜨지 않았다. 김군은 그의 셔츠를 잘라내고 벨트를 풀었다.

잠시 후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이 심폐소생술을 했다. 자영업을 하는 김군의 아버지(48)가 집에 있다가 아들 전화를 받고 달려왔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작은 정자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진 남자는 서서히 회복했다. 경찰이 신분증으로 확인하고 찾아간 그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군과 같은 아파트였다.

경찰은 11일 김군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송호림 금천경찰서장은 “어린 학생의 적극적으로 대처해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들 대신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그런 상황에선 누구나 그렇게 할 것”이라며 “아들이 정신적으로 큰 후유증 없이 살았으면 하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