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뜬금없이 ‘안심(安心)주유소’가 등장했다. 소비자가 품질을 믿고 주유할 수 있도록 정부 기관인 석유관리원이 관리·인증하는 주유소다. 지난 4월 8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만남의광장 주유소가 1호점으로 협약식을 체결한 뒤 지금까지 33개 업소가 안심주유소로 지정됐다고 한다.
소비자가 가짜석유 주유에 대한 우려 없이 품질을 믿고 주유할 수 있도록 기존 석유품질 인증프로그램을 보완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석유관리원은 밝혔다. 요즘엔 TV광고까지 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소비자 안심을 최우선으로 철저하게 품질을 관리하고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면 보상까지 해준다는 게 안심주유소 제도의 핵심이다.
안심주유소가 되려면 최근 5년간 가짜석유 취급으로 적발된 내역이 없어야 하는 등 가입 조건이 엄격하다. 또 가입한 뒤에는 석유관리원이 월 1회 이상 판매제품 품질관리에 나서는 등 주기적인 품질인증 및 관리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지난해 말 기준 알뜰주유소 1132개를 포함해 자가 폴 주유소(자신만의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는 주유소) 총 1462개 주유소가 대상이다.
일견 참 좋은 정책이다. 하지만 시행 1개월여 만에 곳곳에서 정책적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우선 안심주유소에 지정되지 않은 대부분의 주유소를 ‘불(不)안심’ 주유소로 둔갑시키고 있다. 정부가 나서 기존 주유업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셈이다. 특히 경제적 여건 등으로 협약을 맺지 않은 자가 폴 주유소는 대놓고 가짜석유를 파는 주유소를 자인하는 꼴이 됐다. 석유관리원 관계자는 10일 “정유사 브랜드 주유소는 본사에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만 자가 폴 주유소는 영세해서 품질관리를 도와줄 필요가 있어 제도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유사 폴 주유소는 매달 2∼3차례 본사에서 품질관리를 한다. 전체 1만2000여개 주유소 중 90% 정도에 해당하는 정유사 폴 주유소는 아예 자격 자체를 주지 않는 등 정부가 ‘편 가르기를 조장한다’는 지적과 함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2010년부터 자가 폴 주유소를 대상으로 정부가 석유품질 인증프로그램을 운영해 왔지만 가입한 주유소는 286개에 불과했다. 그런데 가입 조건은 더 까다롭고 월 1회 품질검사비용으로 연간 66만원까지 부담해야 하는 안심주유소 협약을 맺을 주유소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일부 주유소의 품질관리비용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안심주유소로 등록하려면 주유소당 연간 660만원을 품질관리비 명목으로 내야 한다. 이 중 90%에 해당하는 594만원은 정부가 세금으로 지원한다. 이들 주유소에 사실상 특혜를 주는 셈이다.
2011년 12월 도입된 알뜰주유소는 정부의 반시장적 개입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권익을 위한 나름의 역할을 했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4대 정유사 중심의 독점적 국내 석유 유통시장이 변화돼 시장 내 경쟁이 촉진됐고, 어느 정도 기름값 인하 효과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주유소 간 경쟁이 이뤄지면서 일부 알뜰주유소의 경우 가격경쟁력이 4대 정유사에 비해 오히려 떨어지고 서비스도 좋지 않아 소비자로부터 외면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석유관리원 등 정부 기관이 진정 가짜석유를 근절시키려면 규제나 감독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될 일이다. 또 알뜰주유소 등 자가 폴 주유소를 활성화시키려면 가격경쟁력이나 서비스 강화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가 엉뚱한 아이디어로 오히려 시장 질서를 혼란시키고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봐야 할 일이다.
오종석 산업부장 jsoh@kmib.co.kr
[돋을새김-오종석] 탈 많은 안심주유소
입력 2015-05-12 0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