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자칭 ‘당(黨)대포’ 정청래 최고위원의 ‘공갈’ 발언과 느닷없이 흘러나온 유승희 최고위원의 노래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순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렸을 게다. 지난 8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벌어진 돌발적 상황은 지금 제1야당의 딱 그 수준을 드러낸다.
유 최고위원은 공적 연금에 대한 박근혜정부의 알뜰한 맹세를 기약 없이 가버렸다는 ‘봄날’에 비유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 최고위원의 노이즈 마케팅이야 더 설명이 필요 없고. ‘공갈’도, ‘봄날’도 미리 준비한 일종의 퍼포먼스다. 유머, 위트, 풍자도 아닌 이런 류의 언동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품위는 언감생심이고 경박하지만 않았으면 좋으련만.
여야는 최고위원 회의라는 것을 운영한다. 지도부 회의체인데 시작할 때 기자들이 보는 가운데 한마디씩 한다. 이때가 언론을 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니 눈길을 끌려면 튀어야 하고, 멋있어야 하고, 뭔가 있어 보여야 한다. 시쳇말로 오버해야 한다. ‘공갈’이나 ‘봄날’이나 다 그런 유형에 속한다.
참석자들은 대개 참모진이 써준 것을 그대로 읽거나 아침 신문의 사설·칼럼 내용을 주장하거나 나름 생각해낸 자극적 표현을 쓰곤 한다. 드물지만 핵심을 찌르는 발언을 하는 이도 있다. 문제는 내용인데, 이런 얘기하려고 지도부가 시간 내 모일까 할 정도가 많다.
회의 발언으로 그 조직의 수준이나 품격을 가늠할 수 있다. 튀는 언동에는 자기가 몸담은 조직보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하려는 몸부림이 배어 있다. 거기에 조직 내 패거리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금상첨화다. 정당의 가치와 존재 이유, 이미지야 어찌되든 상관없다. 맹종 지지자의 환심만 사서 당선돼 안락한 기득권을 유지하는 게 목표이고, 패거리 이익을 최대한 지키면 그만이다. 그런 회의 내용에서 공적 영역의 고민을 볼 수 있는가. 정당의 형태나마 유지하는 게 신기하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한마당-김명호] ‘공갈’과 ‘봄날’
입력 2015-05-12 0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