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쇼스키 남매가 북 치고 장구 친(각본 제작 감독) SF영화 ‘주피터 어센딩’. ‘매트릭스’라는 멋진 SF영화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졸작이었다. 마치 그 옛날 할리우드의 해양활극을 외피(外皮)만 우주로 옮겨 특수효과와 컴퓨터그래픽으로 범벅해 놓은 듯한 내용에 이야기 구성이라니.
영화에 나오는 우주는 1930∼40년대 해양활극의 대양이고 행성들은 섬, 우주선은 범선으로 대체해도 하등 문제가 없다. 게다가 왕가(王家)가 나오고 여주인공은 ‘폐하’로 불린다. 영락없이 왕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고전 할리우드 활극이다. 그래서 주인공 케인 역에 채닝 테이텀, 악역 발렘 아브라삭스 역에 에디 레드메인, 여주인공 주피터 역에 밀라 쿠니스라는 젊은 배우들이 출연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각각 에롤 플린, 베이질 래드본,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처럼 30, 40년대를 주름잡은 해양활극의 단골 배우들 얼굴이 그들의 모습에 겹쳐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SF영화를 아이들용 오락물로 치부한다. 하지만 좋은 SF영화는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주고 인간의 정체성이라든지 자유의지, 선과 악 등 갖가지 철학적 주제들을 생각하게 한다. ‘무슨 무슨 맨’ 같은 단세포적 슈퍼히어로물, 또는 옛날의 서부영화나 시대극에 거죽만 SF를 입힌 스페이스 오페라 말고 새 아이디어와 날카로운 통찰력이 번득이는 좋은 SF영화를 보고 싶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영화 이야기] (19) 좋은 SF영화의 조건
입력 2015-05-12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