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탈퇴론 휩쓴 총선… “영국의 자살” 혹평 쏟아져

입력 2015-05-11 02:15
영국 런던 세너타프(위령탑)에서 8일(현지시간) 개최된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식에서 주요 당 대표들이 참석해 헌화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보수당 대표인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자유민주당 닉 클레그 대표, 노동당 에드 밀리밴드 대표, 스코틀랜드독립당(SNP) 니콜라 스터전 대표.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7일 총선에서 영국 보수당이 압승을 거두자 9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의 총리 관저 앞에서 보수당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 4명이 다치고, 시위 참가자 17명이 연행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의 로스 도우뎃 칼럼니스트는 9일(현지시간) 이번 영국 총선 결과에 대해 ‘영국의 자살’이라고 꼬집었다. 영국 총선 결과를 놓고 쏟아져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앵글로색슨족과 켈트족의 고질적인 민족감정이 반영된 총선 결과인 데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문제와 스코틀랜드의 영연방 탈퇴 문제 등으로 인해 앞으로 영국이 혼란 속으로 빠져들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고질적인 민족감정성 투표=영국은 런던이 있는 잉글랜드 지방과 잉글랜드 북부의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서쪽의 웨일스, 별도 섬인 아일랜드 등 4곳이 연방을 이룬 나라다. 이 중 앵글로색슨족의 잉글랜드와 켈트족의 스코틀랜드는 수백년간 앙숙 관계다. 원래 잉글랜드에 켈트족이 살았는데, 앵글로색슨족이 이들을 북부로 쫓아내고 이곳을 차지해서다.

지난 7일 총선서 압승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유세 과정에서 이런 민족감정을 한껏 자극했다. 그는 “노동당이 승리하면 (노동당과 연정 대상인) 스코틀랜드독립당(SNP)에 휘둘릴 것”이라고 부추겼다. 켈트족이 영국을 좌우할지 모른다는 캐머런의 연설에 앵글로색슨족이 똘똘 뭉치면서 보수당의 압승으로 이어졌다. 캐머런의 그런 발언은 동시에 켈트족을 자극시켜 SNP가 스코틀랜드 59개 지역구 중 56곳에서 승리하게 해줬다.

◇맞물려 있는 브렉시트와 스코틀랜드 독립=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선거 결과로 영국이 대영제국(Great United Kingdom)에서 소영제국(Little England)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면서 “캐머런이 그 소영제국의 ‘건국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는 2017년까지 브렉시트 여부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캐머런 총리의 공약 때문에 영국이 점점 더 유럽으로부터 고립될 것이란 예상에서다. 특히 브렉시트에 대한 불확실성은 경제·정치적 혼란을 가중시켜 영국의 위상을 깎아내릴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브렉시트 우려가 확산되자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9일 기자들과 만나 “유럽에는 규칙이 있으며 영국이 EU 회원국과 먼저 협의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BBC방송 등 현지 언론들은 SNP가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재추진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9월 첫 국민투표에서 독립 찬성이 45%에 머물러 독립이 무산됐지만, 캐머런 정부에 대한 반발이 더욱 확산된 지금은 독립 의지가 한층 고양돼 있다. 아울러 스코틀랜드 주민들은 EU 잔류를 원하고 있어 브렉시트 논란이 커질수록 독립운동 열기도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를 반영하듯 알렉스 새먼드 전 SNP 당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스코틀랜드 주민에게 독립 재투표 시기가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고 밝혔다.

양쪽은 정치적 이념도 달라 보수당은 ‘작은정부’와 긴축재정 정책을 더욱 강화할 방침인 반면 좌파인 SNP는 추가 긴축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사사건건 부딪힐 전망이다. 긴축 정책은 노동당 등 다른 야당들도 반발하고 있다.

◇선거제도 개편 목소리도=캐머런 총리는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과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 필립 해먼드 외무장관,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 니키 모건 교육장관 등 5명을 유임시키며 차기 내각 인선에 착수했다. 이번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UKIP)은 총투표수의 12.6%인 388만표를 얻었지만 의석은 단 1석만 가져갔다. 반면 SNP는 145만표(득표율 4.7%)를 얻었는데 스코틀랜드 59개 선거구 중 56개를 싹쓸이했다. 영국에선 한 선거구에서 최다득표를 한 후보만 당선되고 비례대표 제도는 없기 때문으로, 제도 보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국여론조사위원회(BPC)는 보수당이 압승한 총선 결과를 줄곧 보수당과 노동당의 초접전으로 예측했던 ‘엉터리’ 여론조사 기관들에 대해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한편 헬레 토르닝-슈미트 덴마크 총리의 남편 스티븐 키녹이 이번 총선에서 노동당 후보로 웨일스 남부 애버라본에 출마해 당선됐다. 둘은 벨기에 브뤼주의 유럽칼리지에서 유학 도중 만나 결혼해 두 딸을 뒀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