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의 대가는 혹독했다. 설욕을 위해서는 강훈련만이 있을 뿐이다. 2014-2015 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 우승팀 OK저축은행이 하와이에서 달콤한 휴식을 즐기던 지난 달 하순.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한 삼성화재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한국전력, 프로배구 출범 10년 만에 처음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한 현대캐피탈은 다음 시즌을 기약한 지옥 훈련을 시작하고 있었다.
지난 시즌 삼성화재는 프로배구 정규리그 4년 연속우승의 여세를 몰아 챔피언결정전 8년 연속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유례없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김세진 감독이 이끄는 창단 2년 차의 OK저축은행에 완패하면서 준우승에 그쳤다. 충격적이었다.
그로부터 2주간의 짧은 휴식 후 삼성화재 배구팀은 지난달 27일 다시 소집됐다. 그리고 예년에 없던 고강도의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는 OK저축은행에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완패했다. 경기가 풀리지 않고 부담감이 엄습해오자 청심환 등 진정제를 먹고 뛰는 선수들도 있었다고 한다.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패인을 두고 “우선 OK저축은행의 젊은 멤버들이 워낙 좋았다”고 했지만 “경기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우리팀 책임이 크다”며 자책했었다.
당시 삼성화재는 OK저축은행 시몬(쿠바)과 송명근 등의 강서브에 리시브가 흔들리면서 평소 강점으로 꼽았던 조직력이 와르르 무너졌다. 정규시즌에서 삼성화재는 팀 리시브 꼴찌를 기록할 정도로 불안감을 노출하고 있었다.
다음 시즌을 앞두고 삼성화재가 시급히 보완할 과제는 리시브였다. 사실 리시브는 훈련만 열심히 한다고 단번에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중고교 때 이미 기본기가 갖춰져야 하고 어느 정도 센스를 타고 나야 한다. 신 감독이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은 전례 없는 강력한 체력훈련이었다. 오전 2시간 체력훈련과 일주일에 두 번 체육관 인근 광교산을 등반한다. 튼튼한 하체 힘으로 민첩성을 키워 리시브에 도움을 주기 위한 조처다. 필라테스로 유연성 훈련도 가미하고 있다. 또한 주포 레오(쿠바)와는 일찌감치 재계약을 마쳤다. 벌써 4년째다. 한국프로배구 사상 최장기 계약 용병이 됐다.
하지만 삼성화재는 세터 겸 라이트였던 황동일이 오는 19일, 센터 지태환은 7월 입대, 또 한번 전력 누수현상이 생긴다. 지난 시즌 라이트 박철우가 입대하면서 전력 공백을 실감했던 삼성화재는 다음 시즌에도 추가 보강없이 시즌을 맞는다.
신 감독은 “언제 우리가 최고 멤버로 우승했었나. 우승을 여러 번 하니까 최고 멤버가 됐지”라면서 다음 시즌 선수들의 분발에 기대를 걸었다.
삼성화재와 함께 한국배구 전통의 명가로 꼽혀온 현대캐피탈은 팀 리빌딩에 기대를 건다. 감독부터 바꿨다. 팀에 두 차례 우승을 안겼던 김호철 감독이 물러나고 현역 선수였던 최태웅 세터를 감독으로 전격 승격시켰다. 팀 분위기 쇄신을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젊은 감독은 우선 윤봉우, 여오현 등 주전급 노장 선수들을 플레잉코치로 돌리고 토종 거포 문성민을 주장으로 내세워 분위기를 바꿨다. 세대교체가 된 것이다.
최 감독은 후배 선수들에게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우리가 하는 만큼 올라갈 일만 남았다”며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초 취임하자마자 LIG손해보험과 1-2 트레이드를 하며 전력 보강을 꾀했다. 노장 세터 권영민을 내주고 LIG손해보험의 신예 세터 노재욱, 레프트 정영호를 받아들였다. 이 역시 세대교체의 일환이다.
그는 빠른 배구를 하고 싶어한다. 단순히 세터의 빠른 토스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리시브, 토스, 공격 삼박자를 한 템포 빨리가는 현대식 배구를 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체력이 관건이다. 현대캐피탈은 포스트시즌에 초대받지 못한 탓에 남보다 빠른 4월초부터 훈련에 들어갔다. 2주간의 회복훈련과 밸런스 훈련을 실시했고 지난달 하순부터는 웨이트 훈련과 기술훈련에 들어갔다. 지도자 경험이 전혀 없는 최 감독은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남보다 조금 빨리 팀 조련에 나선 것이다. 용병 충원도 빨랐다. 2012-2013시즌 LIG손해보험에서 뛰었던 까메호(쿠바)와 계약했다. 다소 변칙적이긴 하지만 우리카드에서 영입한 센터 신영석이 다음 시즌 중반 가세하면 예전의 ‘높이의 팀’ 현대캐피탈을 재건할 수 있게 된다.
지난 시즌 신인으로 사실상 주전 세터로 기용됐던 이승원과 트레이드를 통해 LIG손해보험에서 데려온 세터 노재욱의 성장은 오롯이 세터 출신 최 감독의 몫이다. 훈련 틈틈이 개인지도를 통해 이들을 특별 지도할 참이다.
남자배구 신흥 강호로 등장한 한국전력은 다음 시즌에도 역대 최고 성적에 도전한다. 신영철 한전 감독은 어린이 날에도 강훈을 지시했고 어버이날에는 휴식을 주면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OK저축은행과의 플레이오프에서 패한 뒤 곧바로 체력과 기본기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신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게임운영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범실을 줄이고 수비 후 반격의 성공확률을 높이는 것이 바로 강팀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일정 부분 성과를 봐 정규리그 3위까지 올랐지만 아직은 신 감독의 성에 차지 않는다. 블로킹과 서브를 강화하는 것이 비시즌 훈련의 목표다. 전력 보강을 위해 타팀과의 트레이드도 염두에 두고 있다. 체코와 브라질 출신 장신 선수를 대상으로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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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12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