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목사나 전도사 등 한국교회의 부교역자 10명 중 9명 정도는 교회 측과 합의된 계약서를 쓰지 않고 사역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역 종류나 기간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른 채 사역지에 첫발을 떼는 셈이다. 또 부교역자를 청빙할 때 공개모집을 하는 경우가 절반가량에 불과해 청빙절차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2015 교회의 사회적 책임 심포지엄-한국교회 부교역자를 생각하다’에서 이러한 내용의 부교역자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윤실은 지난해 12월부터 한 달 남짓 전국 교회의 부목사와 전도사 등 부교역자 949명을 대상으로 생활과 사역 실태 등에 관한 온라인 설문을 실시했다. 지역과 교단, 교회 규모, 연령별 등으로 세분화해 설문으로 실태조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교회 부교역자는 머슴·임시직·부속품·乙 같아”=설문에 응한 부교역자의 93.7%는 청빙될 때 맡게 되는 사역과 관련해 교회와 합의된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고 답했다. ‘(계약서를) 썼다’는 응답은 6.3%에 불과했다. 또 공개모집을 통해 청빙됐다는 응답은 51.2%였고, ‘추천 방식’으로 부교역자가 됐다는 응답은 44.6%였다.
설문 분석 작업에 참여한 조성돈(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부교역자를 채용할 때 공개모집이 이뤄지지 않는 등 채용절차가 공개적이지 않으면 채용을 공식화하는 단계인 계약서 쓰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채용과정이 더 투명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부교역자들의 경제 여건도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직 경험에 대해 ‘과거 한 적 있다’(26.8%) 또는 ‘현재 하고 있다’(10.7%)는 응답이 37.5%에 달했다. ‘향후 할 생각이 있다’는 응답도 20.4%였다. 부교역자의 배우자 10명 중 6명 정도는 경제활동 경험을 갖고 있었다. ‘현재 하고 있다’가 33.3%였고, ‘과거에 한 적 있다’가 25.9%였다.
특히 40대 이상인 부교역자들의 배우자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비율은 41.0%에 달했다. 반면 20대와 30대 목회자들의 배우자는 각각 20.7%, 31.1%로 나타났다. 조 교수는 “자녀들이 자라면서 들어가는 비용이 점점 늘어나 부교역자의 배우자가 생활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교역자들의 고달픈 생활·사역 여건에 대해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교회에서 부교역자의 삶에 대한 이미지를 정의해 달라’는 질문(주관식·복수응답)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종·머슴·노예’(10.8%)였다. 이어 ‘계약직·비정규직·임시직’(8.1%), ‘담임목사의 종·하수인’(5.5%), ‘부속품·소모품’(5.2%), ‘을(乙)·갑질 당하는 삶’(4.0%) 등의 순이었다. 한국교회 부교역자들의 자괴감이 어느 수준인지 짐작하게 하는 응답이다.
◇“담임목사의 권위주의 근절, 사례비 개선”=응답자들은 ‘부교역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한 필요 조치’(주관식, 복수응답)로 ‘담임목사의 부당한 언행, 권위주의 근절’(22.9%)을 가장 많이 꼽았다. ‘사례비에 대한 기준 및 투명성 제고’(17.0%), ‘사례비 인상’(14.6%), ‘부교역자에 대한 인식 개선’(12.8%) 등이 뒤를 이었다.
배덕만(건신대학원대) 교수는 “오늘날 부교역자들이 처한 열악한 목회·재정적 현실이 잘못된 통념과 이해, 의지의 부족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면서 “개교회뿐 아니라 교단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부교역자 93.7% 계약서 없이 사역… 머슴·임시직·부속품·乙 대우 받아
입력 2015-05-11 0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