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지진 때… 부상 여의사가 23명 살렸다

입력 2015-05-11 02:06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네팔을 덮친 규모 7.8의 강진은 인근 에베레스트에도 어마어마한 눈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영국 출신의 한 여의사가 다리를 다친 악조건 속에서 23명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이 9일 소개한 주인공은 뉴질랜드에 사는 영국 출신의 긴급구호전문의 레이첼 튤렛(34·사진)이다. 그녀는 히말라야구호연합이 운영하는 에베레스트산 등정 베이스캠프에서 응급처치 자원봉사를 해왔다.

사고 당일 지진으로 인한 눈사태로 그녀가 있던 베이스캠프에도 얼음알갱이들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녀는 “쓰나미(지진해일) 같은 거대한 눈폭풍이 밀려왔다”며 “마치 폭탄이 계속해서 터지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렸지만 주변은 온통 폐허가 돼 있었고 다리도 제 상태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래도 내가 살아있다는 게 놀라웠다”며 “다른 사람들이 겪은 것에 비하면 이것은 거론할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튤렛은 아픈 다리를 이끌고 눈 속을 어렵사리 빠져나와 구호작업에 동참했다. 눈 속에는 베이스캠프에 함께 있던 네팔인 19명과 외국인 6명 등 25명이 심각한 부상을 당한 채 파묻혀 있었다. 그녀는 구조 헬기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 24시간 동안 눈 속을 파헤치며 부상자들을 꺼냈다. 비록 2명이 숨졌지만 그녀의 헌신적인 구호활동 덕에 23명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탐험대장 데이비드 해밀턴은 “튤렛은 인대가 찢어진 상태에서도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며 “심지어 이튿날 부상당한 무릎 인대 부분을 마취제도 없이 스스로 꿰맸다”고 증언했다.

현재 튤렛은 뉴질랜드로 돌아가 외상후 후유증과 다리 부상 등에 대한 치료를 계속 받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2주 후 네팔로 건너가 의료봉사를 이어가겠다고 한다.

“2011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185명 사망)을 겪어봐서 지진 피해 지역이 어렵다는 걸 잘 압니다. 뉴질랜드와 같은 선진국도 회복에 오랜 기간이 걸렸으니까요. 가서 힘닿는 데로 돕고 싶어요.”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