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흥순,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품안에… 아시아 여성노동 문제 다룬 다큐 영화 ‘위로공단’

입력 2015-05-11 02:04
임씨의 수상작인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의 한 장면. 연합뉴스
임흥순 작가가 지난 9일 열린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 국제전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뒤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 시상식에서 영화감독이자 미술작가인 임흥순(46)씨가 아시아 여성의 노동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Factory Complex)’으로 전 세계 53개국 136명이 참여한 국제전 부문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최고의 현대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니스비엔날레는 국가관과 국제전, 두 전시로 나뉘는데, 본전시인 국제전에서 국내 작가가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국가관 전시에 참여해온 전수천(1995) 강익중(1997) 이불(1999) 등이 특별상을 받은 적이 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짝수 해는 건축전으로, 홀수 해는 미술전으로 꾸린다. 한국은 지난해 열린 건축전에서 국가관 부문 황금사자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 미술전에서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심사위원단은 “아시아 여성들의 노동 조건이 갖는 불안정성의 본질을 섬세하게 그려낸 영상 작품”이라며 “특히 다큐 형식은 각각의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근로 조건을 직접 대면하게 하는 효과를 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임 감독은 “일터에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께 감사드린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임 작가의 수상작 ‘위로공단’은 가족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머니(73)는 서울 답십리의 봉제공장에서 40여년 ‘시다’(보조)로 일하다 3년 전에야 그만두셨다. 여동생(42)은 백화점과 마트의 의류매장, 냉동식품 코너에서 종일 서서 일했다.

수상작은 작가의 어머니와 여동생 이야기를 아시아 전체의 여성 노동자 문제로 확장시킨 95분짜리 다큐 영화다. 2012년부터 2년간 한국과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등지를 돌며 각국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하고 시위 현장을 촬영했다. 그는 “제 어머니와 여동생처럼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온 많은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헌사의 영화”라고 소개했다.

경원대 회화과 석사 출신인 임씨는 개인사를 사진, 영상, 설치 등으로 시각화하며 사회와 역사의 문제를 드러내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 아버지가 미장이로 일했던 그는 30세가 되어서야 반지하를 벗어나 임대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다큐 ‘내 사랑 지하’(2002 광주비엔날레 출품)다. 첫 장편 다큐 영화 ‘비념’(2012)도 한 할머니의 가족사를 출발점으로 과거의 4·3사건과 현재의 강정마을 문제를 함께 엮어내며 통한의 제주 현대사를 빚어낸다.

그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작품을 통해 현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국제전은 미술의 현실 참여를 강조하는 나이지리아 출신 오쿠이 엔위저(52)가 전시감독을 맡았다.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 100주기를 맞아 자국인의 디아스포라적 삶을 다룬 아르메니아가, 국제전 황금사자상은 관객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작품으로 미국작가 아드리안 파이퍼가 각각 받았다.

베니스=손영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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