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송파구 잠실 주경기장에서 폴 매카트니의 콘서트가 열렸다. 4만여 관객이 운집했다. 지난 추억이 울컥거린다. 학창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의 노래를 소리 나는 대로 받아쓰고 따라 불렀던, 그 순간으로 회귀한다. 각기 다른 젊은 날의 초상이 울렁이는 현장. 음악에 대한 조예가 있든 없든 합창의 물결이 이어진다.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관객은 ‘헤이주드’를 부르며 그의 등장을 기다렸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으로 울려 퍼진 노래가 사람들의 가슴을 하나로 묶어냈다. 사람들은 추위가 내려앉는지조차도 모른 채 열광했다. 모두가 무대 위의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160분간 37곡을 내리 부르는 노장의 무대는 노련했다. 음악적 이음새는 빈틈이 없었다. 관객과의 소통은 무르익었고, 사람들은 연방 환호로 화답했다. 주옥같은 히트곡이 쏟아졌다.
비틀스 4집 음반에 수록된 ‘에잇 데이즈 어 위크’로 오프닝을 장식한 그는 비틀스 활동 시절 노래와 2013년 발매한 솔로 앨범 ‘뉴’에 수록된 레퍼토리로 관객을 유린했다. 무대는 평온했지만 공연장은 역동적이었다. ‘렛잇비’ ‘예스터데이’ 등 불후의 명곡들이 쏟아졌다.
노래는 사연이 있다. 만든 사람, 듣는 사람의 사연이 공존한다. 노래는 4분의 미학이다. 가슴속에 각인된 서사가 존재한다.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때의 모습을 온전히 기억한다. 어디서 어떻게 그 노래를 대면했는지, 함께 들었던 사람의 옷차림과 심지어는 냄새까지도 떠오르게 한다. 짧은 노래의 힘은 위력적이다. 노래는 결핍을 채우고 잠재된 감정을 끄집어낸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노래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화석처럼 잠자고 있는 것이다.
1942년생. 우리 나이로 올해 74세.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뮤지션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폴 매카트니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음악이 이벤트로 소비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신이 만든 음악이 세월을 버티며 사람들에게 불리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강태규(대중문화평론가·강동대 교수)
[문화공방] (2) 폴 매카트니, 추억을 합창하다
입력 2015-05-11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