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이명찬] 국력에 걸맞은 외교목표

입력 2015-05-11 00:30

아베 정권 출현 후 동아시아 국제정치는 소용돌이치고 있다. 역내 국가 간 힘의 이동이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국익에 기초한 힘의 균형 정치가 횡행하는 전통적인 외교의 계절로 접어들었는데 최근 한국 외교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다. 어떻게 볼 것인가?

국가의 외교는 국력에 걸맞은 외교목표를 설정하고, 적절한 수단을 구사하는 것이다. 국력은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총합이다. 하드파워는 경제력과 군사력, 소프트파워는 국가의 리더십, 매력,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 등으로 이루어진다.

탈냉전 직후인 1990년대 초 일본의 경제는 미국을 위협할 기세였다. 일본은 주변국의 우려를 의식해 자위대는 하드파워에 포함되지 않도록 ‘전수방위’를 관철하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선진민주국가라는 세계의 인식과 애니메이션, J팝, 망가 등으로 세계를 열광케 하는 소프트파워도 겸비했었다. 그러나 바로 이어 시작된 ‘잃어버린 20년’ 동안 경제와 문화에서의 침체로 일본은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던 반면, 중국은 G2로 급부상하고, 한국은 소니를 압도하는 삼성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위협론이 역사수정주의 아베 불러

중국은 2010년 일본의 경제규모를 추월하자 9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의 중·일 간 외교적 충돌을 기회로 ‘도광양회’에서 주장하는 외교로 돌변하였다. 중국의 표변은 세계 패권에 대한 도전까지는 몰라도 동아시아에서의 패권경쟁에는 주저하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비쳤다. 이에 일본 여론은 ‘중국위협론’에 화답하여 ‘역사수정주의’ 아베 정권의 탄생을 묵인했다.

경제력만으로는 중국의 위협에 대응할 수 없게 되자 아베 총리는 보수정치의 염원이던 군사력의 부활을, ‘아시아로의 회귀’로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힘을 빌려 교묘히 추진하고 있다. 그 결실이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해석의 변경이며, 이에 기초한 ‘신(新)미·일 방위지침’의 제정이다.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주저해 왔던 군사력을 하드파워로 편입시킴과 동시에 미국의 소프트파워 후광을 함께 획득하는 개가를 올렸다. 또한 아베 총리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2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역사문제를 넘어서서 대화하는 모습을 세계를 향해 어필했다. 이러한 흐름을 창출하는 아베 총리의 외교 수완은 놀랍게도 찬사를 불러온 반면, 한국 외교에 대해서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본질과 한·일 양국 국력의 차이에 대한 냉정한 비교를 동반하지 않는 이러한 평가는 공허하게 느껴진다.

안보와 역사문제는 분리 대응했으면

한·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하던 1965년 벌써 일본은 패전의 폐허를 복구하고 세계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지만, 한국의 1인당 GDP는 200달러를 넘지 못했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일본과 한국의 GDP 격차가 축소되어 양국이 경쟁상대로 인식되기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일본의 경제력은 한국의 4∼5배에 이른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 또한 K팝이나 드라마 등 ‘한류’의 영향으로 비약적으로 상승되었다고는 하지만 남한과 북한을 구별 못하는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일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과거 한국이 일본과 때로는 대등한 외교전을 펼쳐온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일본이 역사문제를 의식하여 주변국을 배려한 경우의 추억에 불과하다. ‘역사수정주의자’ 아베 총리의 막무가내 외교에는 마땅한 대응책이 안 보인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기꺼이 화답하며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일본과, 중국과 공조하여 일본의 역사인식을 비판하는 한국 사이에서, 미국이 한국 편을 들기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위험하다. 국가의 명운과 직결된 안보문제와 미래로 이어질 역사문제는 분리하여 대응하는 지혜가 절실한 외교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명찬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