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창밖에서는 삼삼오오 고구마를 심는다. 꽃밭에 모종을 심는다. 지방에서 실어온 어린 나무를 심는다. 새색시 같은 모과나무 꽃에 반해 꽃가지를 꺾는다. 주먹밥 같이 생긴 조팝나무 하얀 꽃송이를 머리에 꽂는다. 부엌에서는 각기 가져온 아침거리를 데우고 볶고 지진다. 우리 음식, 이탈리아 음식, 미국 음식, 중국 음식이 마구 섞인다. 입에 들어가면 다 맛있다.
농담도 들린다. 서로 놀리고 격려하는 농담, 세상사를 빗대고, 야한 농담도 빠지지 않는다. 아픈 가족사, 깨진 연애, 애통한 사고사의 후유증 등 슬픈 이야기들도 나온다. 다만 절망에 젖어 얘기하지 않으려, 따뜻하게 사람을 보듬고자 노력한다. 절대로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은 돈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다.
힐링의 시간이다. 자연과 요리와 음식과 이야기와 웃음이 저절로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아직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되살려 준다. 같이 노동을 하면서 몸이 움직이고 있음을 깨달으며 마음이 튼튼해진다. 이야기의 힘은 언제나 지대하다. 너와 내가 통할 수 있음이, 우리가 같이할 수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일깨워 준다.
세상은 고달플 뿐이 아니라 역겨울 지경이다. 절망하지 않기에는 수준이 너무 떨어져버려서 희망을 갖기 너무 힘들다. 약한 사람을 짓밟고, 아픈 사람들의 상처를 덧나게 하고, 진실쯤이야 하며 가십이나 다른 뉴스들로 덮어버리려는 행태가 더욱 아프다. 이런 와중에도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 혈안이 돼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사건들로 가득 찬 뉴스들이 역겹다. 가진 게 너무 많은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탐욕과 거짓에 싸여 있으니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힐링의 시간은 절대로 필요하다.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다. 서로 체온을 느끼는 시간이다. 그저 생각과 느낌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잠시나마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살아갈 힘이 솟아난다. 언제나, 사람이 고맙다. 살아있음의 의미를 잊지 않게 해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월요일, 그 힘을 찾아 새 주일을 다시 시작해 본다.
김진애(도시건축가)
[살며 사랑하며-김진애] 주말 아침의 힐링
입력 2015-05-11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