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아들아, 너라면 어떻게 할래

입력 2015-05-11 00:20

몇 해 전이었다. 설을 맞아 부모님과 오랜만에 아침식탁에 마주 앉았다. 불쑥 아버지가 말을 꺼내셨다.

“미안하다.”

“무슨 말씀이에요?”

“국민연금이라는 게 자식들 돈 빼먹는 거구나.”

이미 낸 돈 이상으로 국민연금을 받고 있는데 그게 다 자식들이 내는 돈이라서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면 국민연금을 더 받아야 하는데 젊을 때 납입 보험료를 늘리지 못했고, 먹고살기 바빠 개인연금도 들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셨다.

일흔을 넘긴 아버지는 올해 매달 37만8000원을 국민연금으로 받는다. 기초연금 19만5000원을 더해 57만원가량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자식들이 드리는 생활비에 이런저런 돈들을 합치면 어머니랑 두 분이 먹고살 만하다고 말하신다. 자식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리 미안해할 일도 아니다. 어느 정도라도 연금을 받으니 쥐꼬리만큼 돈을 보내드려도 두 분이 생활하실 수 있는 건 아닐까.

몇 년이 지난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요즘 국민연금을 둘러싸고 온갖 주장과 걱정이 터져 나오고 있어서다.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이니 보험료율 인상이니 A값이니 하는 언뜻 들어서는 이해가 힘든 용어들이 현란하게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어지럽게 쏟아져 나오는 숫자와 낱말을 걷어내면 이 논쟁은 굉장히 명료한 싸움이다. 경기장에 올라선 선수는 정부와 야당이다. 둘 다 국민연금이 계속 존재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다만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의견은 갈린다. 논쟁의 갈래는 대강 이렇다. 야당은 노후에 받는 연금액이 너무 작아서 사회 안전망으로서 공적연금 기능과 취지를 잃어버릴 수 있으니 받는 연금액을 올리자고 한다. 정부는 기금 고갈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보험료를 더 걷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기금 소진이라는 ‘절벽’ 앞에 서지 않기 위해 보험료율을 상향해야 하는 마당에 소득대체율까지 올리면 자식세대가 짊어질 짐이 너무 무거워진다고 따진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낸 돈보다 받는 돈이 더 많은 구조다. 현재 연금 수급자들이 받는 돈은 자식세대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개인적으로 드는 사적연금이 아닌 마당에 이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해법은 간단치 않다. 노인빈곤이 심각한데 ‘용돈연금’만 줄 수는 없다. 노인빈곤이 심각해지면 복지비용이 늘 수밖에 없다. 여기에 들어가는 돈은 모두 세금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연금액을 올릴 수도 없다. 미래세대에게 ‘연금보험료 폭탄’을 떠넘기게 된다. 지금 청년층에게 국민연금을 둘러싼 모든 논의는 ‘폭탄 돌리기’로 비친다. ‘가뜩이나 정년연장으로 부모세대와 일자리 쟁탈전을 벌여야 하는 처지인데 취업을 하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더 내라고?’라는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끔찍한 취업난에 시달리고, 1년 뒤가 불안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재’를 물려주면서 폭탄까지 안기는 건 비겁하다.

그래서 더디더라도 치열한 논쟁과 다툼을 거쳐야 한다. 갈등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자식세대의 지갑에서 갹출한 돈으로 부모세대의 노후를 책임져주는데 세대전쟁, 세대갈등이 없다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닌가. 불신을 믿음으로 바꾸고, 오해를 사실로 대체한다면 국민연금의 지속성과 보장성을 한꺼번에 챙길 수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꾸준했던 공적연금 개혁 사례처럼.

늦은 퇴근길 곤하게 잠든 아들들을 보자 묻고 싶어졌다. “너희라면 어떻게 할래. 어물쩍 넘어가거나 뭉개지 말아야 할 텐데.”

김찬희 사회부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