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권혜숙] 거짓말

입력 2015-05-11 00:10

엄마는 모르는 게 없는 귀신이라고 생각했던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숙제였던 문제집을 온몸을 꼬아대며 풀다가 사회 주관식 문제에서 도저히 참지 못하고 문제집 뒷장의 정답을 베껴 썼다. 저녁 무렵 채점을 하던 엄마가 한말씀 하셨다. “요 녀석, 답안지 봤지?”

왜 들켰는지는 몇 년 후 알게 됐다. 나중에서야 단어의 뜻을 알게 된 문제의 답은 바로 ‘교과서 참조’. 사건의 전말은 또렷한데 혼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오리발 대신 즉시 죄상을 실토하고 용서를 받았던 모양이다. 절대 엄마 앞에서 거짓말을 해선 안 되겠다는 나름의 교훈도 얻었던 것 같다.

인간이란 태생적으로 거짓말쟁이라고 학자들은 본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만 2세 아이의 65%가, 4세 아이의 94%가 거짓말을 한다. 말문이 트이고 생각을 하는 동시에 거짓말을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펠드먼은 성인의 경우 평균 10분에 세 번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인간의 습성이라 쳐도 전 총리와 ‘모래시계 검사’를 비롯한 최근 정치인들의 행태는 지켜보기에도 우울하다. 모두 거짓말이라 단정할 수 없지만 돈을 주었다는 사람에 대해 ‘황당무계하다’ ‘동료 의원 관계일 뿐’ ‘별다른 인연이 없다’는 8인의 합창에 대해 국민의 84%는 돈을 줬다는 사람의 말이 사실일 것으로 믿고 있다고 했다.

선동정치의 대가였던 나치의 괴벨스는 “대중은 처음에는 거짓말을 부정하지만 두 번 말하면 의심하고, 세 번 말하면 믿게 된다”고 설파했다. 그러나 역대 최단명 총리란 기록을 남긴 전 총리와 후배 검사들 앞에 선 모래시계 검사를 보며 80여년 전 나치 시대의 대중과 지금의 대중은 다르다는 교훈을 정치인들이 얻을 수는 없을까. ‘절반의 진실은 완전한 거짓말(A half-truth is a whole lie)’이라고 한 유대인 속담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음날이면 밝혀질 거짓말을 하느니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다는 교훈도 좋겠다.

권혜숙 차장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