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직격 인터뷰-정갑영 연세대 총장] “130년 연세대, 하나님의 뜻이 살아있는 기적의 현장”

입력 2015-05-09 02:07
연세대 정갑영 총장은 연세대 창립 130주년을 맞아 8일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학문적 자질은 물론 창의력과 문화 감수성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성찬 기자
연세대가 9일 창립 130주년을 맞았다. 정갑영 총장은 글로벌 리더십을 기르기 위해서는 섬김과 나눔으로 요약되는 기독교적 가치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해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정 총장을 8일 총장 집무실에서 만났다.



-기독교적인 창립 정신이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 있나.

“그동안의 연세대 역사를 보면 정말 하나님의 뜻이 살아있는 기적의 현장이다. 130년 전 알렌과 언더우드 선교사가 26세의 나이에 척박한 조선 땅에 왔다. 우리로 치면 군대 막 갔다 온 대학생 나이다. 이곳에서 서양 귀신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씨앗을 심었다. 알렌 선교사는 제중원을 시작하며 ‘고통 속에 있는 백성들이 치료받는 기쁨을 선사하겠다’고 다짐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예배당도 학교도 없는, 경계와 의심과 천대가 가득한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며 숱한 역경을 이겨냈다. 이런 헌신과 기부, 도전과 개척의 역사가 있었다.”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교육하는 사례를 든다면.

“RC(Residential College)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실험적인 것인데 이미 선진국에서는 교육적 효과가 증명된 것이다. 원주캠퍼스에서 부총장으로 일할 때인 2007년부터 실험적으로 도입했다. 성공적으로 정착돼 전면적으로 정착을 시켰다. 3년째를 맞고 있다. 총장 취임 후 가장 중점을 둔 프로그램이다. 이걸 하지 않으면 크리스천 리더십을 교육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반 대학은 학원과 비슷하다. 수업만 듣고 가버리니까 진정한 캠퍼스 생활이라고 할 수 없다. RC는 기숙사에 24시간 거주한다. 3인 1실이 원칙이다. 교육학적으로도 세 사람이 살아야 사회성이 가장 많이 길러진다. 한 번은 누구나 알 만한 부유층 인사가 총장실에 전화를 해서 기숙사비를 얼마든지 낼 테니 독방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한 학기나 1년이 지나니까 애들이 달라졌다고 하더라. 방 배정을 할 때 같은 과 학생끼리는 한 방에 배정을 안 한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생활환경이나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줄 알게 된다. 우리 사회에 갈등이 참 많지 않나. 갈등을 해결하고 이웃에 관심을 갖고 돕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울증에 걸려 자살 직전에 간 학생을 룸메이트가 발견하고 도와주기도 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은 교회 등을 통해서 눈에 띄지 않게 지원한다. 기초생활수급자는 기숙사비를 전혀 받지 않고 생활비도 일부 보조해 준다. RC가 공동체 생활을 하니까 같이 프로젝트도 수행하고 운동도 한다. 자연스럽게 성가대도 생기고 예배도 본다. 크리스천 리더십을 기를 수 있다. 일종의 커뮤니티다.”



-학생들에게 경제적 부담은 없나.

“기숙사비가 한 달에 20만원 수준이고, 소득 계층에 따라 주거장학금 형태의 지원이 있다. 조사해보니까 서울에 집이 있는 아이들도 교통비만 한 달에 14만원이 든다고 하더라. 학부모들은 기숙사에 들어간 뒤로 용돈을 거의 안 쓴다고 얘기한다.”



-채플은 어떻게 운영하나.

“신촌은 대학 교회가 별도로 있지만 원주캠퍼스에는 교회가 없었다. 그래서 원주부총장으로 있을 때 지었고, 송도캠퍼스에도 교회를 지었다. 채플시간은 1주일에 한 시간이다. 2학년까지 채플에 참석해 학점을 따야 한다. 채플뿐 아니라 RC를 통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갖춰야 할 덕목이 길러지는 것 같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알고. 그게 큰 변화다. 송도 기숙사에는 매 층마다 커뮤니티룸이 있다. 냉장고도 공동으로 쓴다. 12개 기숙사별로 합창대회, 체육대회도 한다. 기숙사 여건상 1학년 학생들만 대상이다. 기독교 정신 반영을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많이 하고 있는데 예를 들자면 우리 학교가 국내에서 중증 장애인을 제일 많이 받고 있다. 병원도 재활병원이나 어린이 병원은 구조적으로 적자가 심하지만 기독교적 창립정신에 의해 계속 운영하고 있다. 송도 GIT(Global Institute of Theology)라는 글로벌 기독교 리더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주로 아시아·아프리카 등 제삼세계서 선교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생활비와 장학금을 줘서 무료로 교육하고 있다.”



-송도캠퍼스의 경우 설립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하는데.

“정부가 송도에 여러 대학을 유치하려 했지만 처음에 아무 대학도 안 간다고 했다. 연세대만 가겠다고 결정했다. 왜 지방으로 가느냐, 바다를 매립한 곳인데 제대로 학교를 지을 수 있겠느냐며 반대가 많았다. 쉬운 결정 아니었다. 2년여 전 송도캠퍼스에서 RC를 시작했는데 그때도 반대가 대단했다. 한때 못하는 거 아닌가 생각도 들었지만 계속 설득해서 추진했다. 총장직을 걸고 추진했다. 지금은 아시아의 대학 패러다임을 새롭게 정립할 정도로 국내외 교육 관계자들의 관광지 비슷하게 됐다. 지난해 송도캠퍼스를 방문한 사람이 5000명이 넘는다. 국내외 각 대학에서 벤치마킹을 하고 있다. 학생, 학부모, 교수들도 만족하고 있다. 바다를 매립해서 상업용지를 개발했다. 거기서 나온 수익으로 캠퍼스를 만들었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이었다. 6개월만 늦어졌으면 그 뒤로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져 어려웠을 것이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생기는구나,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기적 같은 일이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취업이 어렵지만 대학이 취업양성소라는 지적이 있다.

“취업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본다. 인문학 프로그램을 유지하려고 한다. 오히려 인문학적인 소양을 길러주는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사회가 급속도로 많이 변화하니까 대학 교육의 방향이 이제는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을 갖춘 사람들을 만들어야 한다. 융합적이고 인문학적인 소양이 중요하다. 지금은 대학 문 밖을 벗어나자마자 새로운 것들이 생기는 시대다. 그런 변화에 적응하고 수용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선 더더욱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본다. 실용적이고 단기적 변화에만 적응하는 교육을 한다면 몇 년 뒤면 쓸모없게 된다. 창의력도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길러진다.”



-재단이사회 구성을 둘러싼 갈등은 해소됐나.

“기독교계의 뜻을 반영해 개방이사를 선임하는 방식으로 정리됐다. 이사회는 총장 소관이 아니니까 뭐라고 말할 입장이 아니지만 다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학교 재정은 어떤가.

“요즘 등록금 동결로 긴축재정을 해야 해서 학교 행정인력도 많이 줄였다. 교직원이 거의 20% 이상 감축된 상태다. 급여도 많이 긴축하고 있다. 동시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인센티브도 강화했다. 정교수도 5년마다 평가받아서 업적이 좋으면 특별 호봉 인센티브를 준다. 65세 이후에도 연구 실적이 좋으면 70세까지 갈 수 있다. 글로벌 수준의 교육도입, 교육과 연구의 내실화, 국제화, 캠퍼스 인프라 확충, 사회봉사를 통한 나눔의 실천 등에서 혁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해 대학평가기관인 ‘Times Higher Education’이 실시한 평가에서 아시아 사립대학 중 1위, 세계 사립대학 중 20위에 올랐다. 130년 전에 제1창학, 1957년 연희와 세브란스가 합병돼 연세대가 된 것을 제2창학이라고 한다면 지금은 제3창학을 추진 중이다.”

정갑영 총장은

1951년 전북 김제 출신으로 전주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석사,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정보대학원장, 교무처장, 원주캠퍼스 부총장을 거쳐 2011년 2월 제17대 총장에 선임됐다.

2010년 자유기업원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고교시절부터 교회를 다니며 기독교 서클활동을 한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현재 서울 경동교회에서 장로로 봉사하고 있다.

신종수 부국장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