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0월부터 우리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후생연금’과 공무원연금인 ‘공제연금’을 통합한다. 같은 기간 근무한 민간 근로자와 공무원의 퇴직 후 연금액이 거의 같게 된다. 공무원의 혜택이 다소 줄었지만 반발은 없다. 전문가들은 일본 정치권과 정부, 공무원 노조 사이의 신뢰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한다.
◇“일본 공무원 노조, 정치권 선택 존중”=일본의 공적연금은 ‘3층 시스템’으로 이해할 수 있다. 1층은 20∼60세 전 국민이 가입하는 ‘국민연금’(기초연금)이다.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자영업자와 전업 주부도 가입 대상이다. 여기에 민간 직장인은 후생연금에 가입한다. 국민연금과 후생연금 두 개의 층으로 보호받는 셈이다. 공무원은 국민연금, 공제연금에 더해 ‘직역가산’이라는 3층 시스템을 적용받았다.
10월부터는 직역가산이 폐지돼 공무원도 민간 근로자와 똑같이 2층 연금 체계가 된다. 직역가산은 공무원이 노동 3권을 제약받는 데 대한 보상으로 주어져온 것이다. 일본 공무원은 퇴직 후 매달 1만8000∼2만엔(약 16만3000∼18만1000원)을 직역가산 연금으로 받아왔다. 이에 드는 재원은 100% 정부가 부담했다.
앞으로는 직역가산 대신 ‘연금형 퇴직급여’가 생긴다. 우리의 퇴직연금과 비슷한 적립식 연금으로 공무원 본인이 50%를 부담하고 나머지 50%는 정부가 내준다. 급여액은 직역가산 때의 90% 수준으로 깎인다.
혜택이 줄지만 공무원의 반발은 거의 없었다. 이대로 가면 재정이 위험하다는 정부의 경고를 믿었기 때문이다. 배준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은 정부가 재정추계를 해서 내놓으면 공무원 노조가 이를 흔들려고 하지 않는다. 노조도 의견을 내지만 연금에 대한 장기 계획은 정부와 전문가가 하도록 놔둔다”고 말했다. 실무기구에도 공무원 노조는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다른 이유는 보험료율을 장기적으로 조금씩 인상해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일본 공무원연금의 보험료율은 1970년대까지 월 급여의 7∼8%대를 유지하다 84년 11.4%, 89년 15.2%, 94년 17.44%로 높아져 왔다. 이후 다소 인하됐다가 현재는 16.57%다. 2017년 18.3%까지 인상하기로 사회적 합의가 된 상태다.
배 교수는 “우리는 1960년 공무원연금을 시작해 35년 가까이 퍼주기만 하다 95년부터 죄기 시작했다”면서 “지금의 논란은 그 오랜 기간 보험료율 인상 기회를 놓친 정치권의 무책임 탓이 크다”고 말했다.
◇자민당이 시작한 개혁, 민주당이 마무리=일본의 연금통합 작업은 2005년 자민당 소속이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2007년 법안이 만들어져 의회에 제출됐으나 2009년 중의원 해산으로 자동 폐기됐다.
이를 살려낸 것은 뒤이어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 정권이었다. 비록 상대 정당에서 시작된 개혁안이었지만 국가의 장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보고 과감히 재추진한 것이다. 이른바 ‘피용자 연금 일원화를 위한 후생연금보험법 등 개정 법률안’은 2012년 8월 의회를 통과했고, 오는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배 교수는 “전문가들이 계산한 수치가 ‘위험하다’는 신호를 주자 일본은 여야에 관계없이 이를 믿고 대책을 마련한 반면 우리는 정부와 여야가 논쟁을 벌이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며 “정치인들이 국가의 미래를 의식하느냐, 표를 의식하느냐의 차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후생연금 보험료율도 장기간 조금씩 올려왔다. 1976년 월 급여의 9.1%이던 것을 80년대 들어 10%대 초반으로 인상했고 지금은 17.12%다. 2017년까지 18.3%로 올릴 예정이다. 정액 납부 방식인 국민연금도 2005년부터 매달 280엔씩 올려 2017년 이후에는 월 1만6900엔이 된다. 그 결과 민간 근로자는 국민연금과 후생연금을 합쳐 월평균 22만1000엔(약 200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연금 재정도 2100년 이후까지 고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직장 가입자의 보험료율이 1998년 9%에서 17년간 한 차례도 오르지 않았고 노령연금 평균 수급액도 지난해 41만원에 그치고 있다. 지금 이대로라면 연금 재정은 2060년 바닥이 난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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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09 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