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채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더위와의 전쟁’을 시작한 동네가 있다. 창문을 열지도 못하고 5월부터 에어컨을 돌리는 이곳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입하(立夏)였던 지난 6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 A아파트. 오후 들어 기온이 23도로 오르며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였지만 창문을 열어둔 집은 1개동 28가구 중 2곳에 불과했다. 커튼과 방충망을 덧대 창문을 꽁꽁 막아둔 곳이 대부분이다.
오후 2시쯤 갑자기 ‘부아앙’ 하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비행기가 아파트 단지를 정확히 가로질러 이륙하고 있었다. 이 아파트와 김포공항은 불과 4.5㎞ 떨어져 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2분30초 간격으로 하루 평균 비행기 450대가 이 아파트 상공을 거쳐 뜨거나 내린다.
이 아파트의 소음도는 평소 20∼40㏈이지만 비행기가 지나가자 60∼80㏈로 치솟았다. 근처 도로에 설치된 전광판에는 소음도가 96.7웨클이라고 표시됐다. 웨클은 비행기로부터 발생되는 소음에 운항횟수, 운항시간대 등을 고려해 산정한 ‘소음영향도’다. 95웨클 이상이면 제1종 소음피해 지역으로 분류된다. 소음이 심각한 곳이라는 뜻이다.
5층 주민 B씨(59·여)의 집에 들어서자 밖이 보이지 않고 캄캄했다. 창틀마다 ‘뽁뽁이’(포장용 에어캡)가 붙어 있었다. B씨는 “두꺼운 유리창을 설치해도 바깥 소리가 실내까지 들어온다”며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야 대화가 가능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이른 더위가 찾아오면 불면의 날이 이어진다. 주민 조모(68·여)씨는 “여름 휴가철이 되면 밤에 다니는 비행기가 폭증하는데 열대야에도 문 닫고 사는 집이 대부분이다. 이사 갈 형편도 안 되니 에어컨을 종일 틀어놓거나 지방의 친척집을 찾아가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의 소음 고통은 한층 더 심해질 전망이다. 정부는 김포공항 국제선 노선을 3∼4개 증편하는 계획을 세웠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항공사와 서울시 등의 요청에 따라 김포공항 국제선 노선을 점차 확대하기로 했다”며 “인천과 달리 서울에 위치한 공항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김포공항 인근 주민들을 위해 방음창을 달아주고 에어컨 설치를 지원하는 소음대책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에어컨 전기료는 생활보호대상자에 한해 6∼8월 총 15만원만 지급하는 등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주민들의 소송이 잇따르지만 배상액은 줄어드는 추세다. 2006년 김포공항 부근의 양천구 및 경기도 부천 주민 3만여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1심에서 235억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반면 2심과 대법원은 16명에게 2900만원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손해배상 기준을 ‘80웨클 이상’ 지역에서 ‘85웨클 이상’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인근 지역주민 4명이 다시 소송을 냈다. ‘비행기 소음’을 둘러싼 법정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세환 심희정 기자 foryou@kmib.co.kr
[기획] 비행기 소음에 창문 ‘꼭꼭’ 여름이 무서워요… 양천구 한 아파트 주민들 고통
입력 2015-05-09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