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은 홍준표 경남지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홍 지사가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받았다는 혐의 골격은 비교적 명확하지만 세부적으로 다툴 여지는 여전히 많다. 혐의액도 검찰의 내부적 구속영장 청구 기준인 2억원에 미치지 못한다. 반면 홍 지사 측 인사들이 사건 관련자들을 회유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점과 리스트 중 첫 소환자라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영장을 청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금껏 드러난 홍 지사 혐의 내용을 ‘육하원칙’에 비춰보면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쟁점 윤곽이 드러난다. 우선 ‘언제’가 문제다. 수사팀은 성 전 회장이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통해 1억원을 건넨 시점을 2011년 6월로 보고 있다. 구체적인 날짜는 특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뚜렷한 물증 없이 ‘전달자’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 수사의 한계 때문이다. 돈이 건네진 ‘장소’로 지목된 의원회관의 방문자 출입기록을 확보했지만 2011년 6월 자료는 구하지 못했다. 국회사무처는 최근 3년치 기록만 보관한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 사건 때처럼 돈을 건넨 장소가 식당이었다면 식대를 계산한 카드 전표를 추적해 일시를 특정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할 포인트다.
반면 검찰은 혐의 입증에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한 검찰 간부는 8일 “물증이 없는 한 돈을 건넨 당사자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4년 전 있었던 일의 날짜까지 그 기억에 의존해 특정하는 것은 공소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구체적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돈을 전달한 방법(어떻게)과 동기(왜)에도 다툼의 여지가 많다. 윤 전 부사장은 쇼핑백에 1억원을 담아 홍 지사에게 전달했고, 홍 지사가 당시 보좌관이던 나경범 경상남도 서울본부장에게 “가져가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홍 지사와 나 본부장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또 1억원을 2012년 공천헌금 명목으로 건넸다는 윤 전 부사장 진술과 달리 성 전 회장은 녹취록에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한나라당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건넨 것이라고 밝혀 역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윤 전 부사장 진술이 홍 지사 혐의를 뒷받침하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근거인 셈이다. 때문에 수사팀은 홍 지사 측근인 김해수 전 비서관과 엄모씨가 윤 전 부사장을 회유하려 했던 점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 수사팀 내부에선 이번 사건과 직접 연관이 없는 증거를 인멸·은닉한 경남기업 박준호 전 상무와 이용기 부장을 구속한 것과 비교해 봐도 홍 지사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다툼의 여지가 있는 만큼 ‘혐의 소명 부족’으로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될 수 있다는 점은 수사팀에 부담이다. 영장 발부 요건 중 하나인 도주 우려도 낮다. 기각될 경우 혐의 입증이 더 까다로운 나머지 의혹 대상자 수사까지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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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09 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