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다섯 자의 메모에 지나지 않던 홍준표(61) 경남지사의 경남기업 로비자금 1억원 수수 혐의에 힘을 실은 건 전달자 윤승모(52) 전 경남기업 부사장의 구체적인 검찰 진술이었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그가 2011년 6월 부인이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도착, 707호 홍준표 의원실을 방문해 홍 지사에게 직접 돈이 담긴 쇼핑백을 건넸다고 본다. 윤 전 부사장이 쇼핑백을 챙긴 이로 언급한 나경범(50) 경남도청 서울본부장, 해당 만남을 주선했다고 말한 강모 전 비서관은 수사팀 조사실 문턱을 넘었다.
그런데 윤 전 부사장의 진술로 재구성한 당시 정황이 완전할까. 수사팀은 피의자 홍 지사의 8일 소환을 앞둔 막판까지 윤 전 부사장의 진술 신빙성을 다지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수사팀은 지난 6일 국회사무처로부터 홍 의원실의 방문차량 기록을 제출받는 동시에 서초동 인근 시중은행에 수사관을 파견, 쇼핑백에 과연 현금 1억원이 들어가는지 검증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 측에 준 3000만원을 담은 것으로 알려진 비타500 상자에도 돈을 넣어봤다. 7일에는 강 전 비서관을 재차 소환했다. 홍 지사는 이날 휴가를 내고 상경, 변호인단과 윤 전 부사장 진술의 약점을 파고들 준비를 했다.
◇의원회관 방문했다는데…기록이 없다=수사팀은 6일 오후 10시20분쯤 국회 본관 관리과, 운영지원과에 압수영장을 제시하고 2011년 당시 국회 의원회관 배치도와 설계도면 등을 제출받았다. 윤 전 부사장이 진술한 국회 의원회관 내부구조와 707호 배치 등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자료다. 금품 전달 장소 묘사의 정확성은 추후 이어질 공판에서도 핵심 쟁점이다.
하지만 이는 윤 전 부사장의 2011년 6월 의원회관 방문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물적 증거가 못된다. 수사팀은 의원회관 내부구조 자료를 얻기에 앞서 6일 오전 국회사무처 의회방호담당관실로 협조공문을 보내 2011년 이후 홍 의원실 방문객의 차량, 방문 시각 등 기록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국회사무처는 같은 날 오후 9시쯤 2012년 5월부터 지난달까지의 방문기록만을 회신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최근 3년간의 기록을 보존하기 때문”이라며 “2011년 6월 부분은 자료가 없다고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쇼핑백, 검색대를 통과했나=앞으로 큰 쟁점이 될 부분은 쇼핑백의 검색대 통과과정이다. 수사팀은 윤 전 부사장이 돈을 줄 때 정식으로 방문증을 발급받아 707호로 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거액의 현금을 지참한 민원인이 의원회관 검색대를 통과하면 보고가 이뤄지는데, 그런 보고는 수년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민원인이 의원회관을 방문할 때 모든 소지품을 검색대에 올리고 엑스레이 투시기로 촬영한다. 손에 든 작은 가방도 예외가 없다. 현금다발 등이 투시되는 경우 따로 제지하는 규정은 없지만, 근무자가 “많은 돈이 왔다”는 기록을 작성한 뒤 상부에 보고한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민원인을 마중 나와 데려가는 경우라 하더라도 검색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검색대를 거치지 않고 쇼핑백을 의원회관 안에 들여올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회사무처에 등록된 보좌관 차량을 이용하면 동승자의 진입이 가능했다. 동승자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던 이 관행은 지난해 9월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들이 의원회관 식당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계란세례를 퍼부은 뒤에야 손질됐다. 다만 이는 수사팀이 파악한 금품 전달 정황과 사뭇 다르다. 수사팀은 윤 전 부사장이 차량에 탄 채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을 낮게 본다.
◇공천헌금 맞나=1억원이 공천헌금 명목이라는 취지의 진술도 논란이다. 윤 전 부사장은 4차례의 수사팀 소환 조사에서 “성 전 회장이 홍 지사에게 1억원을 준 건 2012년 총선에서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 공천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성 전 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완전히 상충된다. 성 전 회장은 “한나라당을 사랑하기 때문에 1억원을 전달해 줬다. 내가 뭐 공천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아무 조건 없이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은 이듬해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해 선진통일당 후보로 출마했다.
이경원 정현수 신훈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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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08 0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