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생활 5년간 내 곁을 보디가드처럼 지켜준 딸아이는 효녀 중 효녀지만, 혼기를 훌쩍 넘어서고도 결혼은 나 몰라라 해서 가끔 나의 혈기를 치솟게 한다. 문을 ‘쾅’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 딸아이의 등 뒤에 내리친 매운 회초리 같은 내 목소리가 다시 부메랑이 되어 내 가슴을 칠 때면 이미 오래전 천국으로 이주해 가신 어머님이 문득 그리워진다.
눈보라가 몹시 몰아치던 그해 겨울 밤, 병든 아버지를 먼저 황망히 하늘로 떠나보내신 어머니는 올망졸망 남은 자식들이 너무 아파서 차마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셨다. “걸음 좀 제대로 걸을 순 없어? 도대체 어떻게 걷기에 며칠이 못가 이렇게 다 닳아 없어지는 거야?” 신발창이 다 닳아 없어진 어머니의 신발을 들고 나는 이렇게 짜증을 내곤 했다. 긴 세월 적잖은 재산을 당신의 치료비로 다 써버리시고 빈 통장만 남기신 아버지의 소천 이후,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어머니가 남은 네 식구의 생계를 위해 지푸라기로 잡은 것은 보험회사 외무사원이었다. 동네마다 골목마다 신발창이 닳도록 헤매시던 그때 어머니의 외로움이 새삼 내 것이 되어 가슴을 때린다. 창밖 가로등 불빛에 눈이 시어 문득 잠이 깨던 새벽이면, 잠든 자식들 발꿈치 밑 윗목 차가운 장판 바닥에 이마를 맞대고 엎드려 기도하시던 우리 어머니. 초라했지만 빛나던 그 모습이 겟세마네의 예수님 모습인 것을 그때 어머니 연세를 훌쩍 넘어선 이제야 겨우 깨달은 나는 눈물조차 흘릴 자격이 없는 죄인이다.
딸아이에게 혈기를 부리던 그날. 퉁퉁 부은 눈에 찬물 몇 방울 툭툭 끼얹고 나오다가 문득 마주친 욕실 거울 속에는 몹쓸 이 죄인 대신 일흔넷의 어머니가 예순셋의 내 얼굴이 되어 울고 계셨다. 아니, 예수님이 울고 계셨다.
“울지 마라 내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네가 너의 딸을 사랑하듯 나도 너와 네 딸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노라!”
박강월(수필가·주부편지 발행인)
[힐링노트-박강월] 어머니의 신발
입력 2015-05-09 0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