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흑석동 반지하방에도 카네이션이 피었습니다… 아들처럼 두 독거노인 돌보는 ‘순경’ 이야기

입력 2015-05-08 02:24
서울 동작경찰서 남성지구대 이계열 경위가 7일 흑석동 주택가에서 이난형 할머니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이 경위는 6년째 아들 역할을 하고 있다. 1주일에 서너 번은 들러 안부를 묻고 안색을 살핀다. 곽경근 선임기자

7일 오후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다가구주택. 앞마당에 쭈그려 앉아 빨래를 하던 이난형(81) 할머니가 누군가를 보고는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어디 아팠어?” “차 소리가 들릴 때마다 창밖을 내다봤지.” “엊그제는 집 앞에 큰 경찰차가 왔기에 나 보러 온 줄 알고 따라 나갔어.”

할머니가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 반갑게 맞은 이는 동작경찰서 남성지구대 이계열(54) 경위다. 감기에 걸린 탓에 오지 못하다 2주 만에 할머니를 찾아오는 길이었다. 할머니는 연신 이 경위의 손을 어루만졌다.

이 경위가 카네이션을 꺼내 “우리 어머니 같다”며 가슴에 달아주자 할머니는 “내게도 아들 같다”고 말하더니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서둘러 가야 한다는 이 경위를 배웅하기 위해 굽은 허리로 집 밖까지 나온 할머니는 순찰차가 출발할 때까지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이날 가파른 오르막길 끝에 놓인 또 다른 흑석동 주택가에선 이종순(90) 할머니가 붉은 벽돌담에 기대어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다. 멀리서 순찰차가 보이자 주름 깊은 얼굴에 해사한 웃음꽃이 피었다. 이 경위가 순찰차에서 내리자 할머니는 두 손으로 맨땅을 짚으며 간신히 일어났다. “아이구 순경, 고마워요 이렇게 또 와줘서.”

마중 나온 할머니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이 경위는 빨간 카네이션을 꺼내들었다. “예뻐요. 할머니.” 이 경위가 오른쪽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자 쑥스러운 듯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얼굴에는 봄볕보다 환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정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부축해 반지하 단칸방으로 들어간 이 경위는 “손 아픈 덴 괜찮으시냐” “염색할 때가 되었다”며 살갑게 이것저것 챙겼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를 위해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천천히 얘기를 건넸다. 일찍 남편을 여읜 할머니는 10년 전 함께 살던 여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뒤 완전히 혼자가 됐다. 사람이 그리웠지만 찾아주는 발걸음은 드물었다. 할머니는 “곧 죽을 사람을 신경써줘서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경위는 6년째 두 할머니의 ‘아들’이다. 1주일에 서너 번은 찾아 안부를 묻고 안색을 살핀다. 어렸을 때 할머니 손에 자란 이 경위는 2010년 흑석동 치안센터에 근무하면서 재개발구역 독거노인들의 고독사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두 할머니를 살펴드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안부전화를 하다 차츰 직접 찾아가 소식을 묻거나 병원에 모시고 가기도 했다. 처음에는 경찰 제복을 낯설고 두렵게 느끼던 할머니들도 이젠 하나뿐인 ‘순경 아들’을 기다린다.

이맘때는 이 경위가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시기다. 환절기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노인이 많아서다. 그는 “귀가 안 좋은 이종순 할머니께 전화할 때 통화연결음이 길어지면 순간 가슴이 무너진다”며 “한 번은 전화를 받지 않아 달려가 보니 못 들으신 거였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다시 살아나신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전수민 홍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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