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민태원] 이젠 담배 광고 규제 차례다

입력 2015-05-08 00:20

“맛, 멋, 향” “색다른 상쾌함” “스타일이 산다” “어메이∼ZING” “완벽하다 GENTLEMAN” “화제의 신상”.

얼핏 음식이나 음료, 의류 광고 카피를 연상케 하지만 우리 주변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담배 광고 문구들이다. 화려한 광고판에는 슈트 차림의 잘 생긴 남성 모델이 온갖 폼을 잡으며 담배 향을 맡고 있다. 편의점 내 담배 진열대는 ‘파워 월(Power wall)’로 불릴 만큼 광고 및 판촉 효과가 크다. 그래서 진열대 주위는 늘 이런 이미지성 담배 광고들로 도배된다. 더 큰 문제는 담배 진열대 주변 모니터 및 LED 광고판, 담배 모형들이 넓은 통유리를 통해 편의점 바깥에서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것이다. 국민건강증진법상 편의점 등 지정 소매인 영업소 안에서 표시판·스티커·포스터 형태로 담배 광고를 할 수 있다. 단 영업소 외부에서 광고 내용이 보이면 불법이다.

그런데 상당수 편의점들에서 불법 담배 광고가 묵인되고 있다. 금연운동협의회가 2013년 서울 5개 자치구 151개 편의점을 조사한 결과 90.1%(136개)에서 담배 광고의 외부 노출이 확인됐을 정도다. 국민일보는 2012년 7월 17일자 1면에 ‘불법 판치는 편의점 담배 광고’ 제하 기사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처음 고발했다. 편의점을 수시로 찾는 직장인, 특히 청소년들의 흡연을 부추길 우려가 크다며 규제의 시급성을 지적했다. 보도가 나간 후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는 몇 차례 편의점 내 담배광고 실태 조사를 벌이는 등 부산을 떨었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복지부와 지자체는 불법 광고를 방치한 편의점에 대한 시정명령권이 없다는 해명만 하고 있다. 담배회사들은 담배 광고판 설치 책임을 편의점주에게 돌리고 있다. 영세한 편의점주들은 수입이 줄 것을 염려해 법을 지키는 데 적극 나서지 않는다.

지난해 9월 발표된 범부처금연종합대책에 따라 정부는 2005년 이후 10년 만에 담뱃값을 2000원 인상했다.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를 담은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은 지난 6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 본회의 상정만 남겨놓고 있다. 2002년 이후 12차례나 법안이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다 13년 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끊임없는 담배 회사의 로비, 선거를 의식한 정치 논리 등에 밀린 탓이 크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어도 금연을 위한 대표적 가격 정책과 비가격 정책의 병행으로 정부의 금연 드라이브는 추동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담배 광고 규제에 나설 차례다. 금연종합대책 후속으로 기획재정부와 복지부는 지난 1월 상반기 중에 편의점 내 담배 광고를 금지하는 담배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키로 했다.

하지만 약속한 상반기가 다 되도록 기재부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여전히 편의점주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러다 담배광고 금지도 앞서 두 정책처럼 ‘백년하청’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는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비준했다. 협약 비준국은 담배 광고 및 후원 활동의 포괄적 금지 등에 대한 이행 의무를 5년 안에 준수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이 분야 우리나라의 협약 이행률은 15.4%에 불과하다.

다른 협약 비준국들의 이행률(63%)에 비해 매우 저조하다. 협약 가입을 아예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비준까지 한 상황에서 정해진 기간 내 협약 이행은 국제사회와의 신뢰의 문제다. 기재부는 담배사업법 시행령 개정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

민태원 온라인뉴스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