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행전] “팀이란, 자기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 모임”… 팀이라는 이름의 新가족 ‘울랄라세션’

입력 2015-05-09 00:49 수정 2015-05-09 18:37
울랄라세션 멤버 박승일 군조 김명훈 박광선(왼쪽부터)이 2012년 3월 활짝 웃으며 옆으로 누운 리더 임윤택을 두 손으로 들어올리고 있다. 항암치료를 하고 있던 임윤택은 모자를 쓰고 있다. 울랄라컴퍼니 제공
울랄라프레이즈 하준석 최도원 박승일(왼쪽부터)이 햇빛 잘 드는 창가에 나란히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소니뮤직 제공
2013년 2월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10층의 한 병실. 암 투병을 하던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은 생애 마지막으로 찬송 '내 주를 가까기 하게 함은'을 불렀다. 울랄라세션의 동생들은 이 노래를 담은 CCM 앨범 '써니 데이(Sunny Day)'를 8일 발매했다. 뿐만 아니라 '울랄라프레이즈(Ulala Praise)'를 만들었다. 2011년 '슈퍼스타K3(슈스케)' 출연 당시 동생들과 CCM 음반을 만들고 싶다던 그의 바람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요즘 인기 있는 그룹은 대부분 연예기획사의 '작품'이다. 그러나 울랄라세션은 자생적이다. 임윤택과 멤버 박승일은 10대 때 동네 사회복지관에서 함께 춤을 췄던 사이이다. 멤버들은 노래와 춤을 위해 10여년 함께 살아왔다. 서로를 사랑하고 책임지기 위해 울랄라세션은 영역을 넓혀간다. 새 노래들이 이 사랑의 유산을 증명하고 있다. 울랄라세션은 '울랄라패밀리(Ulala Family)'이다.

‘뭔가 문제 있는’ 동네 아이들의 신

울랄라세션의 베이스보컬이자 울랄라프레이즈 리더인 박승일(34)과 세션 크루 출신으로 프레이즈에 합류한 최도원(30)·하준석(28)을 서울 동작구 현충로 울랄라컴퍼니 사무실이 있는 건물 4층 옥상에서 최근 만났다. 앨범 제목처럼 햇빛이 반짝이는 평일 오후였다. 울랄라컴퍼니는 울랄라세션과 울랄라프레이즈가 소속된 기획사이다.

박승일에게 울랄라세션의 리더였던 임윤택을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물었다. “고1 때예요. 시내버스 328번 기점이 있던 복지관이요.” 서울 양천구 신월로 신월종합사회복지관이 1997년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이다. 10대 청소년들이 동네 공터마다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남성그룹 ‘듀스’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때이다.

“당시엔 춤 열풍이 굉장했죠. 저도 춤을 좋아했어요. 단짝 친구가 어느 날 저한테 이 모든 춤을 복합적으로 추는 ‘춤의 신’ 레전드가 있다면서 그 복지관엘 데려갔어요. 거기서 형을 처음 봤어요. 그래봐야 형이랑 저랑 딱 한 살 차이예요. 하하.”

춤을 추던 친구들은 평범하지 않았다. “춤추던 애들 중엔 얌전하게 공부하는 친구는 드물었어요. 대부분 집안 형편이 안 좋거나 가족관계가 나쁘거나 친구가 없거나 정신적 약점이 있거나…. 형도 어릴 때 흥분조절장애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어요.” 이들은 ‘어른들’로부터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윤택이) 형은 원래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 어른들이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 형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문신을 하고 춤추고 노래한다니까 거부감을 느꼈던 거죠. 언젠가 저한테 ‘나는 주님을 보고 싶은데 무슨 권리로 나를 막는지 모르겠다’며 화를 냈죠. 저희 어머니도 10년 넘게 제가 춤추는 걸 반대했어요.”

“형이랑 해볼래?”로 모인 패밀리

현재 울랄라세션 공식 멤버 박승일 김명훈 박광선 군조 4명과 프레이즈 멤버 박승일 최도원 하준석은 모두 ‘교회 오빠’다. 그동안 수많은 크루(객원멤버)와 댄서가 울랄라세션과 함께했다. 주로 동네 후미진 곳에서 춤추던 친구들이다. “우리는 함께 춤추거나 노래한 친구들을 다 울랄라패밀리라고 해요.”

주로 어떻게 크루를 모집했는지 박승일에게 물었다. “형이 어디 갔다 오면 누군가를 데려와서 저한테 보라고 해요. 제가 트레이닝 담당이거든요. 그럼 제가 노래와 춤을 시켜보고 평가를 하죠.” 프레이즈 멤버 최도원과 하준석의 첫인상이 궁금해졌다. 강원도 춘천 출신인 최도원은 춤을 위해 중 2때 상경, 유승준의 방송안무팀 ING에서 활동했다.

“도원이는 끼가 많고 표현력이 좋았어요. 근데 목소리를 떠는 ‘쿠세’(癖, 나쁜 습관)가 있었죠. 팀 생활을 잘해요. 힘들어도 흔들리지 않고 동생들 잘 돌보고…. 준석이는 촌스러웠어요. (다 함께 웃음) 딱 하나 봤어요. 성실해보였고 감성이 있었어요. 그 감성이 순수함에서 나온 것 같았어요.”

울랄라세션의 크루 선발 기준은 감성과 심성인 모양이다. 최도원은 임윤택을 고교 시절 매점 앞에서 한 번 만났고, 2010년 서울예대 입학 후 다시 마주쳤다. “형이 입학식 공연을 하러 왔었어요. ‘너 형이랑 같이 해볼래?’ 그러더라고요.” 하준석은 2008년 군 복무 시절 건군60주년 기념 뮤지컬 공연단에서 임윤택을 만났다.

“뮤지컬 중대에 HOT 출신 강타와 배우 겸 가수 양동근이 있었어요. 원래 저는 교회에 안 다녔는데 중대원 대부분이 주일에 교회 가서 저도 갔어요. 전역한 뒤 형이 ‘형이랑 노래하자’ 그랬죠.”

임윤택 “암 투병 사실 방송하면 기권”

울랄라세션에도 2009년 해체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몇 달 뒤 임윤택이 멤버들을 다시 소집했다. “형이 강타 선배님과 뭔가 준비하다가 (울랄라세션에서 함께했던) 동생들이 없으니까 외로웠던 것 같아요. 우리한테 ‘내가 너희들을 좋아하긴 좋아하나봐’ 그러더라고요. (미소) ‘울랄라’란 즐겁다는 의미의 만국 공통 감탄사래요. 이름처럼 저희는 싸우지 않고 늘 재미있게 지냈어요.” 다시 뭉친 울랄라세션은 비보이 스타일 춤과 랩, R&B, 발라드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소화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2010년 말 임윤택은 위암 진단을 받는다. 의사는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 생존한다고 했다. “울면서 하나님을 원망했어요.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우리 형이냐고. 안 그래도 우리한테는 열악한 환경과 가정을 주셨으면서….” 박승일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진단 후 동생들은 수술비를 벌기 위해 경기도 하남 미사리 카페촌에 노래를 부르러 다녔다. “한 번은 형이 우리를 따라왔어요. 수술 직후라 피를 받는 혈액주머니를 허리춤에 매단 상태였는데 남색 손수건으로 그걸 가리고 무대에 올랐어요. 우리한테 미안했나 봐요.” 최도원은 “그런데 정말 감쪽같았어요. 정말 믿기지 않는 장면이죠”라고 덧붙였다.

2011년 초 임윤택은 멤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Mnet의 슈스케에 출연하자고 했다. “형 몸으론 할 수 없는 거였죠. 형은 방송사 측에 ‘내가 암 판정 받았다는 것은 내보내지 말아 달라. 만약 내보내면 우리 팀은 기권하겠다’고 했어요. 협박 아닌 협박을 한 거죠. 암 투병이 알려지면 우리는 제대로 실력을 평가받을 기회를 잃고, 시청자들은 우리를 동정할 거라고 했어요.”

그의 암 투병 사실은 방송 초반엔 공개되지 않았다. “우리가 소아암 병동 위문 공연을 하게 됐어요. 형은 항암 치료하면서 머리를 다 밀고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형이 마지막에 모자를 벗었어요. ‘형도 너희들처럼 아프다. 하지만 동생들과 함께 꿈을 이뤄나가고 있다. 너희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얘기했어요. 그날 멤버들도 아이들도 다 울었죠.”

팀워크는 ‘내 것’ 포기하는 데서

임윤택은 이날 후 암 투병 사실을 공개하기로 했다. “형은 자신의 투병이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2011년 9월 말 첫 생방송 ‘달의 몰락’을 부를 때 임윤택은 사망해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다.

“첫 생방송을 앞두고 위경련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어요. 형은 출연하겠다고 하고 멤버들은 울면서 말리고…. 병원과 방송국 측이 다 각서를 요구했어요.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형은 난 죽어도 무대에서 죽을 테니 너희도 목숨 걸고 노래하라고 했죠.”

임윤택은 이날 무사히 ‘달의 몰락’을 불렀다. 울랄라세션은 11월 중순 최종 우승했다. 임윤택은 당시 수상 소감에서 “15년 동안 못난 리더 따라주느라 고생한 동생들 위해서 출연하게 됐다. 팀이란 뭔가 잘하는 이들의 모임이 아니라 팀을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했다. 임윤택이 목숨을 걸고 무대에 섰던 이유였다.

리더는 2013년 2월 11일 소천했다. 암 선고 후에도 3년여를 더 살다 간 것이다. “형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뒤 멤버들이 참 힘들었죠. 평소 모태신앙인 명훈이한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는데 명훈이는 항상 ‘형, 잘될 거야.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언젠가 답을 주실 거야’라고 해요. 그럼 제 마음이 편해져요. 그래도 전 방황을 많이 했어요. 월급 날 돈을 다 털어 술집을 전전하고….”

형의 유산 ‘울랄라프레이즈’

그러다 문득 박승일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랄라세션은 나의 소중한 가족이자 형이 물려준 재산인데 내가 이러고 있다는 게 창피했어요. 슈스케 출연할 때 형이랑 CCM 만드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찬양 앨범으로 더 큰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박승일은 곁에 있어준 최도원 하준석과 서울 서대문교회에 출석하며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울랄라프레이즈의 첫 앨범 ‘써니 데이’에 실린 9곡 중 8곡은 모두 직접 작곡과 작사한 것이다. 블랙 가스펠부터 발라드, 워십, 힙합까지 다양하다. 번안 찬송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은 임윤택이 임종 직전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이다. “목사님이 병실에서 형한테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노래가 뭔지 물었어요. 입 모양으로 ‘타·이·타·닉’이라고 하더군요.”

미국 영화 ‘타이타닉(1997)’ 중 배가 침몰하는 장면에서 이 찬양의 원곡이 현악4중주로 흘러나온다. “형의 마지막 마음 같았어요. 두렵기도 했던 것 같아요. 형의 그 마음을 그리며 불렀어요.”

타이틀곡 ‘아버지’는 하준석이 만들었다. “CCM 앨범을 만들기로 하고 가장 처음 시작한 곡인데 가장 마지막에 나왔어요. 준석이가 한 10번 악보를 엎었어요. 저는 형이 주님의 일을 충분히 하고 갔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 길을 가도록 이렇게 이끌어줬으니까요. 무대에서 즐겁고 행복한 저희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전도라고 생각해요.”

울랄라세션은 수익금 일부를 유족인 아내 이혜림(32)씨와 딸 리단(3)에게 보낸다. 울랄라프레이즈는 오는 21일 오후 7시 전북 전주대 희망홀에서 열리는 ‘청년복음전도축제’ 무대에 선다.

2시간여 인터뷰 후 셋은 또 연습을 하러 간다고 했다. “KBS ‘불후의 명곡’ 준비를 해야 하거든요. 매일매일 연습이에요.” 아픔 속에서 핀 꽃같은 청년들이다. 울랄라!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