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54) 우리에겐 평화가 필요하다 - 내전 중인 말리 수도 바마코에서

입력 2015-05-09 00:53
바마코 외곽 빈민촌에서 만난 할아버지들이 함박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 정인권 선교사를 만날 때다. 그 순간을 렌즈에 담았다.

“가족과 이웃들이 까닭 없이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 했어요.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요. 살기 위해 모든 걸 버려두고 도망쳐 왔습니다.”

2012년 9월 피난처로 이용 중인 선교센터에는 무력한 한숨만이 존재했다. 말리는 내전으로 심각한 홍역을 앓고 있었다. 이미 가까운 이들을 하늘로 먼저 보낸 이들도 있었다. 피난민만 수만명 이상이라는 보도가 연일 나왔다. 대부분이 국경을 빠져나갔고, 일부는 말리 수도인 바마코로 내려왔다. 위험한 상황에서 국제단체들이 철수하고 있는 가운데 피난자 중 일부는 다행히 수도에 남아 있던 한 선교사에게 인계되어 낯선 땅에서 당장 급하게 머물 곳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말리는 전형적인 이슬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2011년에는 여성 총리를 뽑는 등 한때 서아프리카 최고 민주주의 국가였다. 그러나 2012년 4월 6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슬람의 문화도시 팀북투 위쪽 지방인 말리 북부에서 소수민족 투아레그족이 자체적으로 아자와드 공화국을 선포한 것을 신호탄으로 몇 차례 정부군과 강력한 마찰을 빚었다.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국가는 내전 이후 쿠데타까지 겹쳐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럼에도 내가 말리 국경을 넘었을 때 군인과 경찰 등 정부 소속 관료들은 단지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중간 중간 검문소에 멈출 때마다 여권 검사를 면제받는 편의를 봐주고, 때론 호위까지 해줬다. 워낙 거대한 영토라 수도 바마코로 들어가던 루트는 비교적 안전했지만 테러 등의 돌발 상황은 늘 주시해야 했다.

어렵사리 수도 바마코에 들어갔을 때 현지 사역 중이던 정인권 선교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국제정세가 악화되어 여러 구호단체들이 피신하고, 국내 치안이 불안해지는 등 사안이 긴급했지만 사역의 본거지인 바마코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의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해 펼치고 있는 학교 사역과 빈민촌 심방 등 여러 일을 감당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전한 평화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을 때에도 정 선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과 예배를 드렸다. 사진을 찍고 보니 총 7명이었다. 방학이라지만 그는 시국이 어려운 이때도, 소수의 아이들과 담대히 예배를 드리는 것을 귀한 가치로 삼고 있었다. 무슬림인 부모들인데도 그에게 아이들을 보내고 있었다.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은 같다. 내 자녀를 항상 사랑해주고, 잘 이끌어주는 선생님에게 보내는 것이다.

바마코 외곽 빈민촌에 갔다. 여전히 우물물을 길어 쓰고, 가축의 머리를 불에 구워 먹으며, 말라리아에 걸린 아이가 구토를 하고,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시골 내음이 물씬 풍기는 마을에서 정 선교사는 콜롬비아에서 온 선교사와 연합해 보건 사역 등 마을의 어려운 사안들을 헤아려 품어주고 있었다. 비가 오니 마을은 금방 흙탕물 천지가 되었다. 구호 대책이라고는 전혀 준비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매사 작은 조짐에도 미리 위험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여러 사역을 통해 말리에서의 복음 심기가 참 고단하지만 가치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말리 사역을 위해 얼마간의 도움을 주고는 국경을 넘었다. 떠날 때에도 말리는 계속적인 테러와 내전이 확산되고 있었다. 단지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평화일 텐데 가뜩이나 가난과도 힘겹게 싸우는 그들에게 단 몇 달 만에 삶은 너무도 가혹해져 버렸다. 그 뒤 말리 소식을 계속 주시하게 되었다. 뉴스를 타고 여전히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소식과 선교사들의 대피 소식 등은 광야에서 말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게끔 했다.

문종성 (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