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월 18일 오후, 이오덕은 차로 안동으로 해서 일직으로 갔다. 한 신문에 실린 동화 ‘무명 저고리와 엄마’를 보고 작가 권정생을 찾아간 것이다. 혼자 살고 있는 일직교회 문간방, 겨울날 해거름에 찾아온 손님. 이오덕은 마흔아홉이었고 권정생은 서른일곱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났다.
첫 편지는 그해 1월 30일 권정생이 쓴다. “바람처럼 오셨다가 제(弟)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가셨습니다. 일평생 처음으로 마음 놓고 제 투정을 선생님 앞에서 지껄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권정생과 이오덕의 편지 교류는 2002년 11월까지 30년 가까이 이어진다. 그 이듬해 8월 교사 출신으로 열정적인 아동 문학가이자 우리말운동가였던 이오덕은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4년 뒤 “백번 죽었다 살아난대도, 저는 역시 가난하게 살면서 가난한 아이들 곁에 있고 싶습니다”라고 했던 권정생도 질병과 가난으로 점철된 일생을 마감했다. ‘강아지 똥’ ‘몽실언니’ 등 한국 아동문학의 한 정점이 될만한 작품들을 남긴 채.
이오덕과 권정생이 떠나고 10여년이 흘렀다. 어느새 둘의 이름은 잊혀지고 있다. 둘 사이에 오간 편지를 모아서 엮은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오랜만에 그 어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낡고 오래된 것들의 새로움,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 주는 뜻밖의 위로, 순하고 소박한 것들의 강인함 등 요즘 어디서도 만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이오덕은 권정생을 ‘발견’한 뒤 평생 문학적 후견인 노릇을 했다. 글을 쓰도록 격려하고, 쓴 글들을 받아 출판을 모색했다. 또 그의 생활을 챙기고, 병환을 걱정했다. “이런 훌륭한 작가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라는 게 이오덕의 일념이었다.
권정생은 이오덕의 격려와 지원 아래 때론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글을 쓴다. 그는 “제가 쓰는 낙서 한 장까지도 선생님께 맡겨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이오덕을 신뢰했다. 또 “아동문학도 온 생애를 바쳐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 편의 동화를 빚어내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뜨거운 작가가 나와야 만이, 아동문학이 구원을 받고 또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둘은 외롭고 고단한 인생의 동무이기도 했다. 이오덕은 산골 벽촌의 초등학교 교사였고, 권정생은 시골 교회의 종지기였다. 둘은 담소하듯 편지를 써서 보냈고, 보고 싶다고 서로 방문을 요청했다. 또 곁으로 가서 가까운 거리에서 같이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권정생은 “이제야 친구가 어떤 것인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썼다.
‘가난의 철학’이라고 할까, 삶의 거품을 걷어내고 본질을 추구했던 두 사람의 사상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 때문에 너무 염려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올해도 보리밥 먹고, 고무신 신으면 느끈히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가난한 것이 오히려 편합니다.”(권정생)
“고독을 영광으로 아는 지혜를 우리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이오덕)
때마침 이오덕, 권정생에 하이타니 겐지로를 더해 한·일을 대표하는 아동문학가 3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하는 ‘아이처럼 살다’ 전시회가 서울도서관에서 6일 개막했다. 세 작가를 관통하는 주제는 ‘생명과 아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권정생, 동화처럼 아름다운 우정
입력 2015-05-08 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