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히말라야에서

입력 2015-05-08 00:20

비행기가 설산을 넘어 안나푸르나의 북사면으로 접어들자,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땅 전체가 어두운 잿빛으로 변했다. 군데군데 키 작은 덤불들만 눈에 띌 뿐, 꽃도 나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텅 비어 있는 땅이었다. ‘저기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저런 황량한 땅에서 살고 싶을까?’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불경한 생각을 했음에도, 좀솜 공항에 내려 해발 3760m인 묵티나트까지 이틀에 걸쳐 걸어 올라가는 동안, 무스탕이라고 불리는 그 땅에 나는 서서히 매료되었다. 흙먼지와 바람과 자갈뿐인 땅이었지만 어느 곳을 바라봐도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한편,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내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 땅이 아름다워 보일지 잠깐 의심해보기도 했다. 아름답다는 감각은 ‘낯섦’에서 비롯되기도 하니까. 그러나 푸른 하늘 높이 하얗게 날을 세운 능선들을 무거운 잿빛으로 받치고 있는 산들이 지닌 아름다움의 절대성을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존재감’이라는 말은 그곳 산들에게만 써야 할 단어라고 억지를 부리고 싶기도 했다. 내가 살아왔던 곳은 사람들의 세상이었으나, 무스탕은 땅과 하늘의 세상이었다.

이제껏 나는 평범한 일상보다 위대한 건 없다고 부르짖고 살았지만, 무스탕에서 마음을 바꾸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다가 죽었으면 너무나 억울했을 것이다. 그곳에 발을 디딘 순간 나는 다른 사람, 더 넓은 사람이 되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평수가 넓어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평범한 일상이 위대하다는 생각은 도대체 누가 내 머릿속에 넣어준 것일까? 일상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이 위대할지 모르지만, 그 속에 매몰되거나 얽매인 상태로는 하나도 위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에서 밖으로 걸어 나가보지 않는 이상, 그것이 정말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었다. 이제 나는 나를 가두고 있는 마법의 원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나갈 수 있다고 마음먹는다.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