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도 미술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게 한다. 미술의 사전적 의미는 ‘아름다움을 시각·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보지 못한다면 미술도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도 일반인 못지않게 내재된 예술 감성을 갖고 있다고 믿고 이를 드러내는 일에 창조적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이 일을 하고 있는 엄정순은 독일 뮌헨미술대에서 회화전공을 하고 건국대 회화과 조교수로 재직 중 도쿄의 한 갤러리에서 시각장애인들의 미술을 보았다. 그는 학교를 사임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예술적 실천을 모색해온 ㈔‘우리들의 눈’ 대표로 헌신하고 있다. 그는 시각장애인도 일반인 못잖게 창조성이 있지만 사회적 편견 탓에 이를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해온 것을 안타까워했다. 중요한 것은 ‘장애를 장애로 보지 않고 약점을 약점으로 보지 않는 자세’라고 믿고 있다.
시각장애인은 다르게 바라보고 자기 식으로 작업을 한다. 엄정순과 시각장애인 작가들이 함께 연 ‘코끼리 주름 펼치자’(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2015.3.5∼5.10)는 그들이 얼마나 새롭고 신선한 작품 세계를 열 수 있는지를 보여준 감동의 전시였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우리 속담에서 영감을 얻은 듯 그 체험 소재는 코끼리였다.
엄 작가는 코끼리를 슬픔과 동물 디아스포라, 소외의 표상으로 보고 있다. ‘코끼리 걷는다’ 작품도 늘 한 방향으로 걸으며 근원을 찾아가는 발걸음으로 이해하고 있다. 작가는 코끼리와 자신의 근원적인 공통점은 슬픔임을 직감한다. 슬픔의 힘은 무엇인가. 슬픔은 우리로 하여금 근원을 생각게 하고, 우리를 돌아보며, 나를 찾게 한다.
코끼리가 한반도에 일본을 통해 처음 들어 온 것은 1411년 2월 22일 조선 태종 때 동물외교로 였다. 많이 먹고 몸집이 큰 코끼리는 주체하기 어려운 동물로 여겨 전라도 작은 섬으로 유배되기까지 했다. 지금 서울대공원에 있는 ‘사쿠라’라는 이름의 코끼리도 태국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입양되어 갔었다. 2003년 서울대공원에 와서 처음에는 인기스타였으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50세가 되어 코끼리 할머니가 된 셈이다. 한국과 일본 동물원에선 코끼리를 만질 수 없어 엄 작가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태국 치앙마이까지 코끼리를 만지러 가야했다.
함께 전시된 시각장애인의 작품들은 우리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열어보여 주었다. 이들이 만든 테라코타들은 연민스럽기도 했지만 경이롭고 새로운 미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들 작품에서 시각장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물을 시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 오감으로 보고 선험적으로 이해했음을 작업에서 보여준다. 분명 이들은 미술영역을 또다른 세계로 확장시키고 있었다. 그들에게 가장 난점이라 할 색채는 그 구별의 스마트앱을 고안해 냈다고하나 경비 때문에 실용화시키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엄정순은 작가로서도 독창적인 격조와 예술품위를 지켜가는 탐구자이다. 시각장애인들과의 작업도 예술적인 동기에서 시작하고 진행하고 있는 것이지 사회봉사라는 차원에서 보여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여전히 그는 보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으면서 말이다.
이석우 (겸재정선미술관장, 경희대 명예교수)
[이석우 그림산책]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미술에서 묻다
입력 2015-05-09 0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