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아버지… 남편… 자매… 가장 사랑스런 단어 ‘가족’… ‘가정의 달’ 가족 이야기 책 3권

입력 2015-05-08 02:44
75년 생애의 마지막 1년, 자신과 그토록 불화했던 딸에게 43통의 이메일을 남기고 떠난 홍성섭씨. 가운데 사진은 아내 오인숙씨가 찍은 남편의 뒷모습이다. 오른쪽은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26년 만에 서로 쌍둥이임을 확인한 한국계 자매. 출판사 제공
“아버지는 2008년 1월부터 12월까지 당신이 살아온 일생을 한 자 한 자 독수리 타법으로 쳐서 내게 메일을 보내셨다. 일흔다섯 살 노인이 언제 어디서 인터넷을 배우셨던 말인가.”

인생 마지막 시간 딸에게 쓴 편지

아버지의 이메일/홍재희/바다출판사

아버지는 43번째 메일을 쓰고 사흘 뒤 세상을 떠났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여성감독 홍재희(44)씨는 뒤늦게 답장을 쓴다. 그것이 한 편의 영화가 되었고, 한 권의 책이 되었다.

“평생 가난했고, 항상 떠돌았고, 자주 취했던” 아버지였다. “징글징글하게 아버지에 맞서다 집을 나와 버린” 딸이었다. 아버지는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 왜 딸에게 편지를 썼을까? 딸은 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7년이 지난 지금 이토록 긴 답장을 쓰기로 했을까?

“아버지, 이제야 답장을 보냅니다”로 시작되는 책 ‘아버지의 이메일’은 홍씨가 아버지가 남긴 이메일을 중심으로 아버지의 일생을 읽어내고 아버지의 삶을 이해해보려 애쓴 흔적이다. 한 가족, 한 부녀의 이야기지만 가진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이 겪어온 한국 현대사의 기록으로써, 또 지독하게 불화했던 부모-자식 세대의 이야기로써 충분한 공감대를 확보하고 있다.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딸에게 이야기를 건넸고, 딸은 그 이야기를 따라 평생 잊어버리고 살고자 했던 자신의 과거로 가는 문을 연다. 거기서 딸은 작고 연약한 아이였으며, 섬세한 소년이었고, 영화를 좋아하며 한 여자를 사랑했던 젊은 청년, 역사와 시대의 피해자였던 중년 남성을 만난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에게서 비롯되었다”고 고백하게 된다.

카메라 렌즈에 담은 남편의 그림자

서울 염소/오인숙/효형출판

아내는 남편을 찍었다. 아이들을 찍어주다가 그 프레임 속에서 배경처럼 무표정하게 존재하는 한 남자의 존재를 인식하게 됐고, 그에게 카메라 초점을 맞추게 됐다.

“아이들을 향하던 카메라 앵글은 차츰 그에게로 옮겨 갔다. 오래 그리고 깊이 그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노라니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남편의 괴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의 아픔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서울 염소’는 교사 출신 오인숙씨가 18년간 찍어온 남편의 사진이 담긴 사진에세이집이다. 남편을 찍은 아내의 사진이라는 점이 우선 눈길을 끌지만, 사진을 찍는 것이 한 사람을 깊게 들여다보는 방식이며,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는 순간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사진을 찍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응시했다.”

남편은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시선은 늘 밖을 향했다. 멍하니 창가에 서 있거나 틈만 나면 옥상으로 올라갔다. 툭하면 사표를 낸다고 했고,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고 노래했다.

“나는 눈을 감고 그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굵은 목줄로 쇠말뚝에 매인 서울 염소 한 마리. 고개를 떨구고 사무실로 들어가 의자에 앉는다. 햇볕이 그립고 자유롭게 걷고 싶지만 보이지 않는 목줄이 더욱 그를 옥죈다.”

아내는 카메라로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본다. 때론 카메라를 놓고 남편의 그 긴 그림자 속으로 함께 떨어지기도 했다. 오씨는 “그를 찍는 건 결국 나를 바라보는 일이었다”고 썼다.

쌍둥이 자매 26년 만의 기적적 재회

어나더 미/아나이스 보르디에·사만다 푸터먼/책담

“놀라지 마, 우리 쌍둥이인 것 같아.” 8000km나 떨어진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프랑스의 아나이스와 미국의 사만다, 쌍둥이 자매는 26년 만에 그렇게 만났다. 1987년 부산에서 태어나자마자 쌍둥이라는 기록도 없이 각기 다른 나라로 입양된 한국인 자매. 유튜브에서 우연히 자기와 똑같은 얼굴을 발견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쌍둥이임을 확인한 이 기적 같은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어나더 미’는 외신 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쌍둥이 자매의 재회를 자매의 입으로 들려준다.

책은 소설보다 더 극적인 재회 이야기를 넘어 변화하는 현대의 가족제도 속에서 가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자매는 가정의 비극을 상징하는 존재로 태어났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이라는 기적을 증언하는 존재가 됐다.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서로 다른 나라와 부모 속에서 성장했고, 성인이 된 후 다시 가족으로 합쳐졌다. 둘은 가족이 만들어내는 모순과 비극, 그리고 가족이 주는 행복과 가능성 사이를 씩씩하게 오가면서 가족의 현대적 의미를 재발견해낸다.

“여러분의 삶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며 세상 어딘가에는 위대한 기적이 존재한다는 걸 믿는다면,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을 것이다.”

가족은 언제나 강력한 이야기가 된다. 또 가족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이야기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