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부정적 문화유산’ 군함도

입력 2015-05-07 00:10

일본 나가사키항에서 서남쪽으로 18㎞ 떨어진 곳에 하시마(端島)라는 무인도가 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황폐한 섬이지만 야구장 두 개를 합친 크기의 조그만 섬에 한때는 5300여명이 북적였다. 주민들은 당시로선 최신식인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 아파트에서 살았다. 최전성기의 인구밀도는 도쿄의 9배에 달했다고 한다.

일본인은 도쿄보다 살기 좋았을지 몰라도 일제 강점기 조선인에겐 ‘지옥섬’이었다. 섬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 해서 군칸지마(軍艦島·군함도)로 더 잘 알려진 하시마에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한 건 19세기 후반 양질의 석탄이 발견되면서부터다. 이후 일제는 강제징용한 조선인을 이곳에서 노예처럼 부렸다. 강제징용된 조선인 600여명 가운데 무려 122명이 숨졌으니 지옥이 따로 없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곳 없는 곳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조선인 생존자들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이 섬은 1974년 폐광과 함께 버려졌다. 그러나 건물 잔해와 잡초만 무성한 이 섬에 들어가려면 입장료 300엔(약 2700원)을 내야 한다. 유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군함도를 포함해 강제징용 조선인의 한이 서린 7곳이 오는 7월 독일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를 막지 못한 우리 외교의 실패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으나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일본 정부가 아무리 ‘메이지시대의 산업혁명 유산’이라고 우겨도 그 속에 오롯이 남아 있는 추악한 역사를 감출 수는 없다. 나치의 잔혹함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는 취지에서 ‘부정적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처럼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들을 그렇게 각인되도록 만들면 된다. 일본 정부의 문화유산 등재가 자승자박이 되도록 하자. 이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국치를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서도 이런 시설들이 남아 있는 게 낫다.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