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吳起)는 손자병법과 함께 중국 2대 병서(兵書)로 꼽히는 오자병법의 저자다. 그는 춘추전국시대 위나라 장군으로 76번 적과 싸워 64번 이기고 12번 비겨 훌륭한 장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종기를 빨아 어진 마음을 베푼다’는 고사성어 ‘연저지인’이 그에게서 유래됐을 만큼 그는 병사들을 아꼈다. 어느 날 오기는 등창으로 고통 받는 병사를 발견하고 달려가 자신의 입으로 피고름을 빨아냈다. ‘이런 장군과 함께라면 목숨이 아깝지 않다’는 병사들이 늘었고 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로 똘똘 뭉친 군대는 당연히 전투에서 높은 성과를 냈다.
국방부 출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한 장군에게서 “군인정신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런 저런 미덕을 나열하자 그는 “‘군인정신은 제정신이 아니다’가 답”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제정신이라면 포탄이 날아오는 전장에서 ‘돌격, 앞으로’ 했을 때 나가겠느냐”고 반문했다. 제정신이 아니니까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앞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맹활약했던 미국의 조지 패튼 장군이 “리더십이란 부하들로 하여금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했던 말이 바로 이런 의미다.
리더십의 핵심은 신뢰다. 부하들의 목숨을 자기 목숨만큼 아끼는 지휘관은 부하들이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일도 하게 한다. 요즘 우리 군에서는 이런 지휘관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수개월째 진행되고 있는 방산비리 수사 대상이 된 전·현직 장성들이 10여명이 넘는다. 성범죄로 현역 장성이 실형을 선고받는 초유의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지휘관들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군은 때로 이런 불만을 토로한다. 북한군 한 명이 최전방 철책을 뚫고 내려왔다고, 전방 사단에서 병사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30여년 넘게 군에 헌신해 온 3성 장군, 4성 장군이 옷을 벗는 일이 옳은 일이냐고. 이해되는 점이 없지는 않다. 이들은 수십 차례 검증을 거쳐 그 자리에 오른 우수한 인력이다. 또 국가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발생하면 국민들이 군 수뇌부를 질타하고 그들이 군을 떠나도 ‘국가적 손실’로 보지 않는 이유를 군은 곰곰이 되씹어봐야 한다.
존경받는 장군들이 적은 이유는 군 인사제도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군의 상당수 구성원들은 실력과 도덕성보다는 학연과 지연, 근무연이 진급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그런 제도를 통해 그 자리에 오른 이들에게 신뢰를 보낼 수 있겠는가. 진급철만 되면 국방부와 각군 본부 주변에 대상자들의 흠결을 지적하는 투서와 ‘카더라 통신’이 횡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인사철이 아닌데도 투서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기형적인 인사행태가 더 심해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군 지휘부가 투서자들을 색출하라는 서슬 퍼런 지침을 내려도 성과는 없다.
지난주 군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이들 상당수가 지적한 것이 인사문제였다. 1992년 빌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현직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날린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문구는 그의 승리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 당시 미국민들의 심정을 정확하게 잡아냈기 때문이다.
군은 지난해 각종 사건사고에 대한 반성으로 다양한 병영문화 개선대책을 내놓고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군이 들어야 하는 말은 “바보야, 문제는 인사야”라는 말인 것 같다.
최현수 군사전문 기자 hschoi@kmib.co.kr
[내일을 열며-최현수] “바보야, 문제는 인사야”
입력 2015-05-07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