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공무원연금 개혁이 일단 무산됐다. 대선 공약에도 없던 사안인데 2013년 10월께 공론화 후 1년7개월 만에 성과가 얻어졌다. 2009년 개혁 시 정부 주도 위원회를 통한 공론화 작업과 개혁법안 마련, 국회 심의 과정에 3년 정도가 걸린 것을 감안하면 요란스럽긴 했지만 효율적인 개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노사정이 참여한 ‘국민대타협기구’에서의 합의방식 개혁인데도 정부 여당이 당초 의도했던 목표 대비 80% 수준의 장기 재정안정 효과를 거둘 전망이다. 여기에 그동안 성역으로 간주되던 수급자의 연금액 동결 조치(5년)를 도입, 향후 재정안정을 위한 강력한 수단 하나를 확보한 점 등 이번 개혁은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측면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남은 문제점 몇 가지를 살펴본다.
첫째, 장기 재정안정이 여전히 미흡하다.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 국가경쟁력이 높은 나라 중 상당수는 1980년대 중반 이후의 개혁 조치로 현 제도를 크게 손보지 않고도 50년, 100년에 걸쳐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미적립 채무가 빠르게 늘어 10년 후 제법 크게 손봐야 재정안정을 기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리고 향후 재정안정과 관련하여 공무원과 정부의 실질적 비용분담에 대한 명시적인 룰 도입이 과제로 남아 있다.
둘째, 신규 임용 공무원에게 국민연금을 적용하지 못한 점이다. 위에 든 경쟁력 높은 국가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임용된 공무원에게 국민연금(방식)을 적용, 형평성과 소득재분배를 추구하고 있다. 개정법안에 반영된 소득재분배는 중상위층인 공무원 내부에서의 소득재분배로 의의와 파급효과가 크지 않다.
셋째, 기존 제도 틀이 유지되고 논의가 재정안정화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제도 개혁이 공무원과 민간근로자 생애소득에 미칠 파급효과 분석이 약하거나 간과되었다. 더 내고(29%) 덜 받으며(10.5%), 소득재분배가 추가되는데 2016년 이후 임용 공무원과 유사 경력의 민간근로자 생애소득이 직급별로 어떻게 바뀔지 불분명하다. 개혁의 성격을 규정하고 공무원 직종 선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늦게라도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할 것이다.
넷째, 대타협기구에 노사정과 전문가가 참여하였지만 논의 기간이 짧고 참여자가 많은데 여러 안이 동시적으로 거론되어 결국 실무기구가 단기간에 서둘러 합의안을 도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지난해 10월 개정법안을 발의한 새누리당은 ‘짝퉁’ 구조개혁 법안을 헌신짝 버리듯 포기했고, 해당 법안 작성에 참여한 전문가 집단도 지론과 주장을 버리고 지지받기 쉬운 안으로 갈아탔다. 야당과 노조는 ‘신구 공무원 차별 반대’라는 명분에 얽매여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 못해 타협안이 현 제도 틀에서의 모수개혁에 머물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좋은 게 좋지’ 하면서 제도 개혁에 임한 참여 주체들의 격(格)이 앞에 거론한 국가 개혁주체의 그것과 대조되어 부끄럽다.
다섯째, 실무기구가 개혁에 따른 세금 절감분의 20%를 국민연금 급여 인상(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상향) 재원으로 사용케 한 점이다. 국민연금은 가입자 수가 공무원연금의 20배나 되고 재원도 세금 아닌 보험료 중심으로 운영되며 재정안정이 출산율과 경제성장률에 좌우된다. 저출산과 저성장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득대체율 인상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 발족할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인상의 필요성, 인상 범위와 방법 등을 제로베이스에서 논의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배준호 한신대 대학원장
[시사풍향계-배준호] 2015 공무원연금 개혁을 돌아본다
입력 2015-05-07 00:43 수정 2015-05-07 1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