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현숙 (8) 잿더미가 된 이삿짐 속에서 발견한 성경 한 권

입력 2015-05-08 02:39
2011년 2월 요르단 시리아 난민촌에서 침을 놓아주며 의료 봉사를 하고 있는 김현숙 원장.

뉴질랜드 한의과대 문을 닫은 뒤 해밀턴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한의원을 개원할 생각이었다. 2006년 12월, 해밀턴 집을 그대로 비워둔 채 오클랜드로 이사했다. 집이 팔리면 큰 짐들은 그때 옮기기로 하고 우선 한의원 설립에 필요한 짐만 싣고 오클랜드로 향했다.

그런데 이삿짐을 실은 차가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불이 났다며 연락이 왔다. 이삿짐센터 사장님이 밤 11시쯤 전화해 “차에 불이 났는데, 차량 뒤편에 실은 짐이 조금 탄 것 같다. 괜찮은 것 같다”며 안심시켰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다음 날 불난 장소에 가봤다. 조금밖에 손실이 안 됐다는데, 이삿짐 5톤 트럭에 가득 실은 물건 전체가 모두 재로 변해 있었다.

설움이 복받쳤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뒤로하고 ‘혹시라도…’ 하는 심정으로 재를 뒤적였다. 그러면서 “내가 이 안에서 무엇을 찾으려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은 정말 계시기나 한 것인가?”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때 뉴질랜드 마오리족 한 남자가 타다 남은 캐리어 하나를 절단해주었다. 가방을 열어보니 물에 젖은 성경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한의원 설립에 필요한 의자며 책상, 책들, 각종 의료기기 등은 모두 불타 재로 변했는데 성경책 한 권만 받아들었다. 그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 것을 느꼈다. 하나님 음성이 가슴속으로부터 들려오는 듯했다. “네가 말씀과 침만 있으면 되지 무엇이 필요하냐.”

해밀턴 집으로 돌아와 가장 빛이 잘 드는 곳에 성경책을 펴놓았다. 서재를 정리하던 중 책상 서랍에서 낡은 책 한 권을 찾았다. 그동안 학교를 운영하면서 여러 명의 침의 대가들을 만나 다양한 종류의 책을 선물로 받았었다.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그대로 책장에 꽂아둔 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날 발견한 오행침에 관한 책도 그중 하나였다. 관심 있게 책을 읽어나갔다. 침을 놓는 다양한 위치들, 침의 원리가 깨우쳐졌다. 그리고 며칠 뒤 성경책과 침 가방을 챙겨 오클랜드로 왔다. 이후 날마다 새벽기도를 드리며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깊이 묵상했다. “말씀과 침만 있으면 되지. 내가 침으로 너를 높이리라.”

오클랜드에 아큐플러스클리닉을 개원해 2007년 새해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한의원과 힐링센터를 겸한 클리닉에는 많은 환자가 찾아왔다. 찬양을 하루 종일 틀어놓았다. 환자를 대할 때는 ‘왜 이러한 병이 왔는지’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들어 설명해줬다. 그리고 침을 놓았을 때 환자들이 놀랍게도 병을 치료했다.

하지만 클리닉이 잘 될수록 근거 없는 소문이 돌았다. 원장이 해밀턴에서 사기를 쳤다, 원장이 한의사 자격증도 없이 한의원을 차렸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다. 오히려 사기는 내가 당했다. 단 한 명도 피해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해 9억원이 넘는 집을 담보로 각종 세금과 교수들 월급, 학생들 지원에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그 덕에 나는 빈털터리가 됐다.

또 중국 남양중의대를 졸업했고, 뉴질랜드 침구사협회의 서류 심사를 거쳐 한의학 시험도 치렀다. 당당하게 뉴질랜드 침구사 자격증 및 한의원을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나라에서 환자에게 지급하는 보조금으로 클리닉을 열심히 운영하는데도 불구하고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계신데 무슨 걱정을 하는가? 걱정할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