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히말라야 라우레비나야크(해발 3930m)의 산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도 지난달 25일 오전 11시50분쯤(현지시간)이었다. 전승완(58)씨 가족을 비롯한 등산객 10여명이 산장 안에 있었다. 전씨와 조카(30)는 다른 외국인 등산객 10여명 사이에 섞여 난롯불을 쬐던 참이었다.
돌로 세운 건물은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몸부림쳤다. 입구는 순식간에 앞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돌들이 70∼80㎝ 높이로 쌓여 출구를 막았다. 사람들은 돌무더기를 뛰어넘었다. 몇몇은 돌에 맞았다.
전씨도 뒤따라 빠져나왔지만 딸들이 보이지 않았다. 두 딸은 침낭을 덮고 쉬겠다며 2층으로 올라갔었다. 전씨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딸들은 놀란 얼굴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지진이 멈춘 뒤에도 산장은 계속 흔들렸다. 건물은 기둥이 약했다. 전씨는 딸들을 끌어안고 밖으로 나왔다.
전씨가 딸들과 조카를 데리고 히말라야 등반에 나선 건 지난달 16일이었다. 고산을 오르며 각자 인생을 돌아보자는 생각이었다. 각각 24, 26세인 딸들은 대학을 마치고 취업을 준비 중이었다. 조카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회사원이었다.
전씨 가족은 서둘러 산장에서 배낭을 챙겨 나와 하산을 시작했다. 언제 또 여진이 올지 알 수 없었다. 이틀 동안 걸어 올라간 길을 4∼5시간 만에 내려왔다. 오후 6시쯤 닿은 툴루 샤브르는 건물 상당수가 무너져 있었다. 24일까지 이틀을 묵었던 곳이었다. 최소 4명이 죽었다고 주민들이 말했다.
툴루 샤브르에서 천막을 치고 사흘을 지냈다. 첫날밤 주민들은 “지진이 오면 바로 뛰어나가야 한다”며 자지 말라고 당부했다. 잇따라 여진이 왔고, 그때마다 산들이 무너졌다. 전기와 통신은 이미 끊겨 외부와 연락할 길이 없었다. 주민들은 맨손으로 잔해를 걷어내고 시신을 화장했다. 전씨 가족이 오래 묵을 수 있게 천막을 옮겨주기도 했다. 인근 초소의 군인들은 지켜만 봤다.
27일 조카와 포터(짐꾼)가 산마을인 둔체로 가서 상황을 살폈다. 여기에도 교통편은 없었다. 다음날 오전 6시쯤 전씨는 딸들을 데리고 툴루 샤브르를 떠났다. 계곡 사이로 난 도로는 산에서 쏟아져 내린 바윗덩어리로 막혀 있었다. 돌아가거나 넘어갔다. 머뭇거리는 순간 바위들이 덮쳐올 것만 같았다. 뛰는 현지인들을 따라서 뛰었다. 5시간 만인 11시쯤 둔체에 도착했다.
둔체에서 만난 한국인 등산객 2명은 막 출발하다 지진을 만났다고 했다. 예순이 넘은 그들은 자신들이 있던 산장과 휴게소가 모두 무너져 40∼50명이 묻혀버렸고 거기에 한국인들도 있었다고 했다. 한 명은 전씨에게 “어떻게 딸들을 이런 데 데려왔느냐”며 “크레이지 파파(미친 아빠)”라고 했다.
오후에 안개가 끼고 큰 비가 내렸다. 계속 걸어서 4시 반쯤 한 마을에 도착했다. 버스는 없었다. 5000루피(약 5만원)를 주고 덤프트럭을 얻어 탔다. 한 시간 반쯤 달려 튜리슐리까지 갔다. 거기서 다른 한국인들이 여행사를 통해 전세 낸 18인승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200달러(약 22만원)를 요구하는 운전기사에게 100달러를 줬다. 앞서 지프차로 올라갈 때만 해도 1인당 700루피(약 7000원)였다.
밤 10시 넘어 도착한 카트만두는 캄캄했다. 앞서 묵었던 호텔은 주저앉아 있었다. 인근 식당 사장은 거기서 40명이 죽었다고 했다. 그날 밤 딸들은 엄마와 통화하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터뜨렸다. 딸들은 "괜찮아, 괜찮아. 우리는 곧 나갈 거야"라며 엄마를 안심시켰다.
전씨 가족은 다음날인 29일 저녁 카트만두 타멜의 한 식당에서 기자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생기발랄한 딸들의 얼굴에는 살아서 돌아왔다는 안도가 가득했다. 그들은 "10시간을 걸어서 내려왔다"고 강조했다. 등을 보이고 앉은 전씨는 지쳐 보였다. 이들은 3일 비행기를 타고 태국 방콕으로 갔다.
전씨는 4일과 5일 통화하며 생환 과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그는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다. 애들까지 데려와 이게 무슨 일이냐 싶었다. 아이들에게 큰 일이 나면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고 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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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930m 산장 무너져… 죽다 살았다”
입력 2015-05-06 03:06 수정 2015-05-06 1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