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졸속 개혁]‘숫자의 함정’에 빠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논란

입력 2015-05-06 09:35 수정 2015-05-06 09:52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상향 조정’ 논란과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최근 사흘간 세 차례 자료를 배포했다. 2건의 보도참고자료와 1건의 보도해명자료는 주요 내용이 똑같았다. 자료에서 복지부는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것에 난색을 표했다.

정부 주장은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은 미래세대의 부담’ ‘미래세대 부담을 줄이려면 두 배로 보험료 인상 불가피’ ‘보험료 올리면 국민에게 부담’이라는 논리 구조를 갖고 있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지난 2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려면 보험료를 두 배 수준으로 올려야 가능하다. 보험료를 두 배 올릴 자신 있느냐. 그렇게 하지 못하면 포퓰리즘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복지부의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 반대’ 논리는 ‘소득대체율을 건드리지 않으면 보험료는 크게 올리지 않아도 되고, 미래세대에도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소득대체율 안 올리면 보험료 안 오른다?=2013년 국민연금 장기재정을 추계했더니 기금 소진 시점은 2060년이었다. 김혜진 복지부 연금정책과장은 “기금 소진 시기가 2060년이라고 국민연금기금 재정 목표를 2060년으로 삼을 수는 없다”며 “재정 목표를 2060년으로 고정시키고 소득대체율을 올리자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득대체율을 건드리지 않더라도 기금 소진 시기를 2060년 이후로 연장하려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복지부가 세 차례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기금 소진 시기를 2088년까지 연장하려면 보험료율을 12.91%로, 2100년 이후로 연장하려면 14.11% 또는 15.85%까지 올려야 한다. 지금 보험료율 9%보다 1.6∼1.8배 정도 올려야 기금 소진 시기를 최대한 늦출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득대체율을 올리지 않더라도 기금 소진 시기를 늦추려면 보험료율을 올리는 게 불가피하다. 복지부는 자료에서 수치를 제공하지만 공식적으로 ‘소득대체율을 올리지 않더라도 보험료율을 높여야 한다’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국민 입장에서 ‘어차피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면 소득대체율도 함께 올려 연금을 좀 더 받겠다’는 선택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소득대체율 안 올리면 미래세대 부담 없다?=정부는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미래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거듭 강조한다. 복지부 자료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같은 2060년에 소진된다 하더라도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릴 경우 미래세대의 부담이 커진다.’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고 소득대체율만 50%로 올리면 2060년에 기금이 소진된다. 이후 현재의 ‘부분적립 방식’에서 ‘부과 방식’으로 전환하면 보험료율이 25.3%로 껑충 뛴다. 소득대체율이 40%면 2060년 기금 소진 후 미래세대가 부담할 보험료율은 21.4%다. 3.9% 포인트 차이다. 소득대체율을 올리지 않고 현재 상태를 유지한다 해도 미래세대의 부담은 큰 것이다.

복지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 차이가 더 커진다고 분석한다. 2083년이 되면 소득대체율 50%일 때 보험료율이 28.4%, 40%일 때 22.9%로 격차가 5.5% 포인트로 벌어진다.

다만 미래세대 부담에 대한 복지부의 우려가 ‘조삼모사’라는 지적도 있다. ‘용돈’ 수준의 연금을 주는 현재 국민연금으로는 노인빈곤 문제를 키울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노인 2명 중 1명이 상대적 빈곤 상태다. 노인빈곤이 심각해지면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다른 사회복지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때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세금이다. 결국 현세대 국민의 노후를 ‘용돈연금’으로 방치했다가 ‘연금보험료 부담이냐 세금 부담이냐’를 놓고 고민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