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과거사 사죄 없는 미국 의회 연설 등으로 악화된 한·일 관계가 조선인 강제징용이 벌어졌던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문제로 더 악화될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이달 안에 도쿄에서 일본 정부와 양자회담을 열어 나가사키조선소 등 강제징용 대상지인 7곳에 대해 폴란드의 유대인 학살 현장인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과 같은 ‘부정적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 등을 제안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유네스코에 권고한 뒤 뒤집히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알려져 또 한번 외교전에서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에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유력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은 후쿠오카현 기타규슈의 야하타제철소, 나가사키현의 나가사키조선소(미쓰비시중공업), 미쓰비시 해저탄광이 있던 하시마(일명 ‘군함도’) 등 모두 23개 시설이다. 나가사키조선소 등 일부 시설은 현재도 가동 중이다.
이들 시설 가운데 하시마 탄광과 나가사키조선소 등 7곳은 2차대전 당시 조선인 약 5만7900명이 강제 동원된 곳이다. 전쟁 당시 군함을 만드는 기지였던 나가사키조선소에서는 조선인 약 4700명이 강제징용됐으며, 이들 중 약 1600명이 원자폭탄 투하 당시 숨졌다. 나가사키에서 남서쪽으로 18㎞ 떨어진 하시마 탄광도 조선인 600명이 강제 동원돼 섭씨 40도까지 치솟는 해저탄광 갱도에서 하루 12시간씩 지옥 같은 노동을 했던 곳이다. 이 섬에서 일하거나 탈출하다 숨진 조선인만 122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등재신청서에는 이런 내용이 쏙 빠져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등 논란을 피하기 위해 8개 현에 분산돼 있는 23개 시설을 일괄 추천하는 것은 물론 등재 기준의 시기도 한일병합조약이 맺어진 1910년까지로 제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시마 탄광과 이와테현의 하시노 철광산은 직선거리로만 약 1300㎞ 떨어져 있다. 이처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시설이 일괄 추천된 경우는 드물다.
일본 정부는 5일 “메이지시대 산업 유산과 2차대전 당시 강제징용은 다른 문제”라며 일괄 추천 배경에 대해 일련의 유산을 함께 살펴야 그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특정 시점만 떼어내 역사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그 이후 전개된 어두운 역사를 숨기는 것은 결국 ‘역사 왜곡’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종선 조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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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수천명 희생한 징용시설 세계문화유산 만드는데… 교묘한 日, 외교실패 韓
입력 2015-05-06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