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비폭력 투쟁인가 쇼인가… 나체 시위 보는 두 시선

입력 2015-05-06 02:59

'왜 남자 꼭지는 되고 여자 꼭지는 안 되냐.' 지난달 15일 서울 청계천에 팬티 차림으로 나타난 이모(27·여)씨는 이렇게 적힌 피켓을 들었다. 그는 같은 달 13일 광화문광장, 14일 강남역에서 '모피를 입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적힌 피켓을 들기도 했다. 이후에도 서울 번화가 곳곳에서 수차례 속옷이나 반라 차림으로 동물 보호를 외쳤다.

이씨는 전라 상태로 클럽에서 춤을 추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체 사진을 올리는 등 ‘기행’으로 입소문을 탄 ‘아우디녀’다. 페미니스트, 동물보호 운동가를 표방하며 나체 시위를 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 vs ‘주객전도’=조직적 나체 시위는 2008년 4월 10일 우크라이나에서 섹스산업에 반기를 든 페멘이 결성되면서 본격화됐다. 페멘은 성 차별, 독재, 종교 등 인간 자유와 존엄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맞서는 세계적 조직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12월 25일 페멘 소속의 우크라이나 여성이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가슴에 ‘신은 여성이다(God is Woman)’라는 문구를 쓰고 나체 시위를 하다 경찰에 제지당했다. 페멘은 낙태를 반대하는 가톨릭교회를 비판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7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선 페멘 한국지부 대표 송아영(24·여)씨가 상반신을 드러내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나체 시위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갈래다. 옹호하는 쪽은 효과적인 표현 방식이라고 말한다. 장승진 국가인권위원회 양성평등진흥원 강사는 “‘나체’도 하나의 표현 수단이기에 나체 시위를 할 권리도 보장받아야 한다”며 “목적만 정당하다면 사회에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페멘 한국지부 대표 송씨는 “시위는 메시지를 공표하는 것이 목적이고 그러려면 관심을 끌어야 한다”며 “나체 시위는 여자의 몸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최고의 시위”라고 했다.

반면 ‘수단’이 ‘목적’을 퇴색시킨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일부 여성단체는 성을 도구로 이용한다고 꼬집는다. 신소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강사는 “사람들은 ‘모피 반대 시위’가 아닌 ‘비키니 입고 시위하는 사람’을 기억한다”며 “표현 방식이 시위 목적을 가리면 ‘메시지’는 죽고 ‘쇼’만 남는다”고 지적했다. 여성문제연구회 이향연 간사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나체를 시위 도구로 삼는 것은 ‘성’이나 ‘여성의 몸’을 쉽게 생각하는 세태에 일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불편한가 음란한가=나체에 대한 대중의 불편함은 윤리와 법의 경계에 있지만 나체 시위에 들이댈 법적 잣대는 마땅치 않다. 대부분의 나체 시위는 집시법 적용을 받지 않는 1인 시위 형태를 띠고 있다. 때문에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건 나체가 불편하다는 ‘신고’가 들어왔을 때다. 송씨는 지난해 7월 시위 때 경찰에 연행돼 경범죄처벌법상 과다노출 혐의로 범칙금 5만원을 물었다. 아우디녀 이모씨도 최근 같은 혐의로 5만원의 범칙금을 문 것으로 전해졌다.

나체 시위자와 ‘바바리맨’의 차이는 ‘벗는 목적’에 있다. 음란한 행위 자체가 목적이며 성 풍속을 해하려는 고의가 있으면 형법상 공연음란죄를 적용할 수 있다. 2013년 전주지법은 전북지방경찰청 앞에서 민원 해결을 요구하며 15차례에 걸쳐 나체 시위를 하고 경찰관을 때린 혐의로 기소된 김모(40)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판례가 흔치 않아 판단은 제각각이다. 법무법인 더쌤의 김광삼 변호사는 “나체 자체를 직접적 음란행위로 보기 쉽지 않아 대부분의 나체 시위자를 과다노출로 처벌하지만 항의가 아닌 노출이 목적이라고 여겨지면 고의가 있다고 해석해 공연음란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노출 정도가 심하면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야기하는지’를 따져 공연음란죄 적용을 고민할 수 있는데 이 역시 판단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전수민 심희정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