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8일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작심한 듯 일본을 비난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7·7사변(노구교 사건) 77주년을 맞아 일본을 맹비난한 데 대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중국이 역사 문제를 국제 문제로 만드는 건 지역 평화와 협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맞받아치면서다.
훙 대변인은 스가 장관의 발언에 대해 “일본 정치인들이 역사를 직시하지 못하는 점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수정주의적 과거사 인식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일본은 과거 침략 역사를 반성하고 군국주의와 깨끗이 절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흘 뒤에는 친강(秦剛) 대변인이 재차 “중국에는 ‘진정성이 없으면 끼어들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일본이 태도를 단정히 하고 실질적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중·일 관계는 말도 꺼낼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대해 강경 노선을 역시 취하던 한국으로서도 쉽사리 꺼내지 못했을 강도 높은 발언이었다.
변화가 감지된 건 지난해 말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중·일 정상회담이 열리리라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APEC 회의 직전인 같은 해 10월 27일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정상회담에 대해 “중국은 이미 여러 차례 중·일 관계 개선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중국의 태도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별도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보름 남짓 지난 같은 해 11월 14일 중국의 태도는 완전히 바뀐다. 중·일 양국이 영토 문제와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4개항 합의를 이끌어낸 데 이어 APEC 회의에서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다. 훙 대변인은 “4개항 합의는 중·일 관계 개선의 중요 조건”이라면서 “중·일 관계가 점진적으로 개선되려면 합의의 철저한 이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거사 반성 없이는 관계 개선이 없다’는 스탠스에서 물러선 것이다.
이후 중국은 본격적으로 ‘대일(對日) 메시지 관리’에 들어간다. 일본의 집단자위권 추진 및 ‘중국 위협론’ 제기, 일부 정객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양국 간 전면 갈등이 빚어질 만한 현안들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중국은 원칙적 수준의 논평만 전했다. 원색적인 비난을 삼가는 대신 “역사를 직시하라” “4개항 합의를 준수하라”고만 촉구하는 식이다. 화해 국면에 접어든 중·일 관계를 굳이 깨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18일 화 대변인은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및 평화헌법 개정 추진 움직임에 대해 “주변국의 주권, 안보, 이익에 해를 끼치리라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면서 “일본은 국제사회 및 주변국에 지속적으로 대립과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9개월여 지난 3월 20일 훙 대변인은 같은 문제에 대해 “일본은 주변국의 우려에 적극 대응해 평화적 발전을 견지하고 지역의 안정과 평화에 건설적인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라고만 말하며 별도의 비난을 하지 않았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11일 친 대변인은 스가 장관이 “신사 참배는 영혼의 문제”라고 발언한 데 대해 “일본 지도자들이 A급 전범이 합사돼 있고 침략 전쟁을 미화하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건 중국 등 주변국 국민의 감정을 심하게 자극하며 중·일 관계의 정치적 기반에 해를 끼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지난 1월 15일 같은 문제가 불거졌을 때 훙 대변인은 “침략 역사를 깊이 반성하고 군국주의와 선을 그어야 중·일 관계는 비로소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다소 온건한 발언을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입장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10월 22일 화 대변인은 일본이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하며 이를 보도한 언론사가 “일본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밝힌 데 대해 “과거 침략 역사를 남김없이 직시하고 깊이 반성할 것을 엄숙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반면 아베 총리의 하버드대 강연에서의 위안부 언급에 관해 훙 대변인은 “일본은 역사를 직시하고 위안부 등 역사 문제에 책임 있게 대처해야만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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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06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