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슈분석] 中의 對日 실용외교 ‘강경→ 유연’ 급속 변신

입력 2015-05-06 02:38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진 것을 계기로 중국 정부의 대일(對日) 인식이 급격히 변화한 것으로 5일 나타났다. 중국은 한때 일본에 대해 격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양국 관계 개선을 고려해 부쩍 자제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12월 24일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일본과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양국 관계 개선과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일 관계 발전은 양국의 근본 이익에 부합한다”면서 “평화적 발전을 견지해 지역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해 달라”고 일본에 당부하기까지 했다.

화 대변인의 발언은 지난해 중반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수위의 대일 온건 기조다. 불과 5개월 전인 같은 해 7월 8일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은 “(중·일 관계가) 매우 엄중한 국면이며 그 책임은 일본에 있다. 일본이 실질적 조치를 취해야만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장애물을 걷어낼 수 있다”고 맹비난한 바 있다.

중국의 대일 인식이 급격히 변한 계기는 지난해 11월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 주석과 아베 총리의 전격적인 정상회담이 열린 이후부터였다. 그 전만 해도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과거사 반성 없이는 관계 개선도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정상회담 이후 중국은 과거사와 영토 문제로 일본과 수차례 마찰을 빚으면서도 일본에 원색적인 비난은 매우 자제하고 있다.

중국의 태도 변화는 지난달 열린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에서 두 정상이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더욱 가속화되는 형국이다.

당시 시 주석은 “일본은 중국과 함께 평화적 발전의 길을 함께해 세계 및 지역의 평화와 안정, 번영에 기여하는 데 큰 공헌을 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시 주석 발언은 일본 아베 정권이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를 시사하면서 나왔다는 게 외교가의 지배적 분석이다. 양국 관계가 급진전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국가주석으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일본 비난에 앞장섰던 시 주석의 입장 변화도 의미심장하다. 지난해 7월 “누구든 침략 역사를 부정·왜곡하고 심지어 미화하려 하면 중국 인민과 각국 인민은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그가 최근엔 일본 비난을 삼가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여전히 ‘원칙주의’ 대일 기조를 고수하는 우리 정부와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정부는 일본에 대해 과거사 문제와 협력 사안을 분리해 대응한다는 ‘투트랙’ 기조를 내세우지만 ‘과거사에 대한 인식 전환 없이는 관계 개선도 없다’는 스탠스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 대해 대통령과 외교장관까지 나서서 ‘더 전향적으로 과거사를 반성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중국이 아베 총리 연설에 대해 별도의 고위급 인사 발언 없이 외교부 정례 브리핑을 통해 “역사에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 달라”고만 간단히 논평한 것과 대조적이다.

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은 “(한국은) 일본을 적대국가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일본이 한국의 적대국가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원인은 일본이 제공했지만 한국의 적대적·감정적 대응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