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300일 이내에 출산한 아이의 아버지를 무조건 전 남편으로 추정토록 규정한 민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이 조항은 1958년에 제정됐다. 이혼 자체가 드물었고 여성이 법적 이혼 전에 다른 남성의 아이를 가지는 경우도 흔치 않았던 때다. 헌재는 사회적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A씨(여)가 민법 844조 2항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6(헌법불합치)대 3(합헌)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고 5일 밝혔다. 2012년 2월 남편과 협의 이혼한 A씨는 같은 해 10월 동거남과의 사이에서 딸을 출산했다. 하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동거남의 아이가 명백했지만 ‘이혼 후 300일 이내 출산한 아이는 전 남편의 아이로 추정한다’는 규정 때문에 동거남의 성(姓)을 따를 수 없었다. 구청 직원은 전 남편을 상대로 ‘친자관계임을 부인하는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답만 되풀이했다. A씨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지적했다. 해당 조항이 만들어졌을 때와 비교해 이혼 및 재혼은 월등히 늘었다. 여성의 이혼 6개월 이내 재혼을 금지했던 법률도 사라졌다. 이혼숙려기간을 두면서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이 난 때부터 법적으로 이혼 효력이 발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늘었다.
법률적 실익도 없다고 봤다. 이혼 이후 다른 남성과 낳은 아이임이 명백한 데도 전 남편의 아이로 추정한 뒤 이를 부인하는 소송을 내게 하는 것은 무의미한 낭비라는 것이다.
헌재는 “사회적·의학적·법률적 사정 변경을 고려하지 않고 300일 기준만 강요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고 결론 내렸다. 다만 당장 이 조항이 사라지면 법적 공백과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국회가 법을 개정할 때까지는 이 조항을 적용토록 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이혼 후 300일 이내 출산하면 前남편 아이… 헌재 “기본권 침해로 헌법불합치”
입력 2015-05-06 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