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의 꽃씨 칼럼] 퓨리티를 넘어 유니티로

입력 2015-05-06 00:02

동로마제국의 멸망을 직감한 마누엘 황제와 요한네스2세는 서구 유럽 국가들을 순방하며 구걸 외교를 했다. “우리 좀 도와주세요. 우리가 망하면 당신들도 위험합니다. 우리가 망하면 언젠가 당신들의 나라도 이슬람화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서방 교회들이 “당신들하고 우리는 신학과 교리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며 모르는 척 외면했다. 그러자 동로마의 황제가 다시 애절하게 당부했다. “신학과 교리는 조금 다를 수 있지 않습니까? 같은 예수를 믿고 신앙의 정체성이 같은데요. 신앙의 컬러가 좀 다르다고 어찌 안 도와줄 수 있습니까? 그래도 이슬람보다는 우리가 낫지 않나요? 우리가 망하면 언젠가 당신들도 망해요. 그러니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구걸 외교를 해도 서방교회는 끝내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5월 29일 이슬람의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날 성벽 높이 바람에 펄럭이던 십자가기는 땅에 곤두박질 당하였고 이슬람을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였다. 투르크 군사들은 굶주린 사자처럼 노략과 겁탈에 혈안이 되었다. 그들은 얼굴이 반반한 처녀들을 겁탈하려고 서로 칼부림을 했고 그 아리따운 딸들은 팔다리가 잘려 죽었다. 교회 사제들은 참수됐고, 예배당에서 쓰던 휘장은 어린 아이들을 노예로 끌고 가는 밧줄로 사용됐다.

오늘날도 무조건 교리적 퓨리티(Purity·순수성)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사역의 방법과 다양성을 모르고 무조건 남을 정죄하고 공동체를 분리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유니티(Unity·통일성)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신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무조건 하나됨만 주장한다. 그러다가 종교다원주의로 빠져 버린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퓨리티와 유니티의 갈등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둘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니까 내부의 소모전을 하다가 공멸의 나락으로 추락해 온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퓨리티를 위장한 자기주장이나 사욕을 앞세워 갈등과 분열을 촉발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각 교단의 순수성과 정체성을 지켜야 하지만, 퓨리티를 앞세워 수구적 주장과 결집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위장된 퓨리티의 가면을 쓰고 자기 집단의 고집을 위하여 남을 정죄하고 비난하며 분열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기독교 역사도 실제 퓨리티를 포장한 수구 집단의 사욕으로 인한 갈등과 분열의 역사인 경우가 많았다. 또한 유니티의 가면을 쓰고 종교다원주의로 빠지고 바벨론 음녀의 종교와 놀아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신앙과 신학, 교리적 퓨리티를 소유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사역의 열매를 거둘 수 없다. 퓨리티를 지키려고만 하면 안 된다. 퓨리티의 정체성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나와 다르더라도 상대를 수용하고 포용할 필요가 있다.

서구 유럽의 왕들이 동로마를 도와주었으면 메흐메드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할 수 없었다. 기독교가 마지막까지 연합하지 않아서 동로마는 비참하게 멸망했고 이슬람 천지가 된 것이다. 성 소피아 성당과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한 이레네교회를 비롯해서 100여개가 넘는 거대한 교회 건물들이 다 이슬람 사원이 되어 버렸다. 이 얼마나 비극적 역사의 참상인가.

한국교회도 더 늦기 전에 퓨리티를 넘어 유니티로 가야 한다. 유니티를 하자는 말은 종교다원주의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퓨리티를 지키면서 반기독교적인 정서에 대응하고 그 공격을 막아내야 할 때 유니티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반기독교적 세력이 얼마나 전략적으로 한국교회를 공격해오고 있는지 아는가. 그럼에도 왜 지금 한국교회는 퓨리티를 포장한 수구적 결집과 교권의 욕망으로 서로 단절해 있는가. 다시 거친 파도와 광풍에 맞서 유니티의 돛을 올리고 나아가자. 한국교회 부흥의 전성기를 다시 한번 맞이하기 위해 퓨리티를 넘어 거룩한 유니티의 항해를 시작해 보자.

소강석(새에덴교회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