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란 멍청하기 이를 데 없어서 코는 숨 쉬는 데에만 이용할 뿐 모든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중에서)
작품에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역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덧없는 영역’인 향기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른다.
이 치명적인 ‘향기’에 매료되어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 향을 맡고 섞어 매혹적인 향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조향사다. 이성숙 애경 향료파트 책임연구원은 향기디자이너 조향사를 교향악단 지휘자에 비유한다. 각각의 악기가 조화를 이뤄야 훌륭한 연주가 되듯 조향사는 각각의 향을 균형 있게 조합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하루 종일 향을 맡고, 향을 만드는 이들이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향 제품을 쓰지 않는다. 냄새가 섞이면 향을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에 향수는 물론이고 향이 진한 화장품조차 쓸 수 없다. 민감한 후각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10번 이상 양치질도 해야 한다.
최근 들어 ‘향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면서 조향사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향기는 신제품 개발에서 부수적인 요소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향기를 고려한다. 과거엔 단순히 악취를 감추기 위해 사용되던 향이 이제는 매력 발산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정미순 지엔퍼퓸 이사는 “훌륭한 조향사가 되기 위해서는 후각과 감성 그리고 기억력이 뛰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정 이사는 “후각은 선천적인 비중이 크지만 감성과 기억력은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키울 수 있다”면서 “좋은 후각을 갖고 있으면 향을 잘 구분할 수 있겠지만 조향사는 그저 향을 구분하는 직업이 아니라 향을 조합해 표현하는 직업이므로 후천적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향에 관심이 있어도 향을 배우기 어려웠다. 전문적인 공부를 하려면 해외로 유학을 가거나 독학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의 화장품 관련 학과나 사설 교육기관에서도 조향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취미로 자신만의 향수나 향초 등을 만들 수 있는 공방도 많이 등장했다.
서울 방배동 지엔퍼퓸에서 조향사 준비를 하고 있는 김혜영씨는 “흔히 향을 보이지 않는 액세서리라고 한다”면서 “형체가 없는 향이 다른 사람을 유혹하고 나의 매력을 높여준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향을 만들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사진·글=김지훈 기자 dak@kmib.co.kr
[앵글속 세상] 매혹의 香을 연주하는 아티스트… 향기를 만드는 사람들 ‘조향사의 세계’
입력 2015-05-06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