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현숙 (7) 한의과대 위기로 하나님 다시 영접하는 은혜를

입력 2015-05-07 00:14
뉴질랜드 한의과대 이사장 때의 김현숙 원장. 학교를 운영하며 숱한 어려움을 겪었고, 그 어려움은 다시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가 됐다.

말도 안 되는 투서를 조장한 이는 학교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A교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눈에 영주권자도 아닌 사람이 이사장이랍시고 앉아 있는 게 보기 싫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시 A교수는 이민성에 ‘이사장이란 사람이 직원들에게 워크 비자를 돈 받고 팔고 있다’고 편지를 보냈다. 노동부에는 ‘직원들 월급을 착취하고 제때 돈을 주지 않는다’고 써 보냈다. 또한 유학생 관리기관에는 ‘학생들 관리도 안 하면서 돈만 받아 챙겼다’는 식으로 편지를 썼다.

며칠 뒤 교육국에서 긴급 감사를 나왔지만 별다른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너와 학교 관계자 간 다툼으로 생각하고 종료했다. 그런데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서 불거졌다. 편지 내용에 ‘뉴질랜드는 6년제 한의대도 아닌데 유학생들을 불법으로 받았다’고 한 부분이 교육국과 학생들에게 혼란을 안겨줬다.

감사팀은 일일이 학생들을 면담했다. 분명 중국 허난중의대와 우리 학교가 교환학생 형태로 교류하고 학위를 서로 인정하기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를 신뢰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몇 명을 빼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학부모들도 있었지만 학생들의 결정이기 때문에 어쩌지 못했다.

결국 A교수는 자신의 잘못이 탄로 나자 학교를 피해 도망갔다. 학교는 학교대로, 나는 나대로 힘을 잃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정말 이렇게까지 막다른 길에 몰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날마다 노동부, 이민성을 불려다니며 조사받으면서 수차례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되뇌었는지 모른다. 그 감정을 억누르고 참았던 건 아이들 때문이다. 훌쩍 커버린 아들은 이미 프로골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었다. 그런 아들이 있는데, 어떻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힘든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 변호사가 영어 공부도 할 겸 외국인 교회에 나오라고 권면했다. 뉴질랜드에 온 날부터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상담하면서 알게 된 나이 지긋한 변호사였다. 그분에 의해 교회를 다시 나가게 됐다.

2006년 5월 현지인들이 다니는 성공회교회에서 영어로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생겼다. 교민 교회를 찾아갔다. 해밀턴교회를 다니며 비로소 교민들과 교제하고 성경공부도 시작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교민 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나였다. 매 주일 예배를 드리고, 교회 행사에도 적극 참여했다. 야유회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현재 내가 처한 억울함과 분노, 미움, 원망, 다툼을 성도들이 알기 시작했다. 자기 일처럼 여겨준 그들이 나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렸다. 목사님께 건의해 금요 철야기도회도 드렸다.

나의 기도제목은 오로지 학교와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얻었다. 모두 떠나고 남은 학생 6명을 끝으로 2006년 11월 최종 학교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의 회생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혼자 감당하고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새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봤다. 다시 생명의 주님이 내 마음에 자리잡고 계셨다. 학교를 정리하는 것을 기점으로 하나님은 나를 향한 또 다른 계획을 하나 둘씩 세워가고 계셨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들의 고통을 돌보시며 그들을 위하여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그들을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시 106:44∼46)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