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나는 아빠가 천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빠는 엄마와 내가 다툴 땐 차분하게 중재했고 따뜻한 말로 얼어붙은 우리 마음을 녹여주었다. 내가 어리석은 질문을 하면 생각지 못한 답을 알려주기도 했고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데도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빠는 언제나 참고 기다려주었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어릴 땐 자주 성질을 부렸다. 그럴 때면 아빠는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나를 달랬다. 한번은 친구와 다투고 화가 나서는 그 친구가 미워죽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빠가 물었다. “누군가 미워하면 그 누군가뿐 아니라 네 영혼도 작아질 텐데, 그래도 좋니?”
아빠와 재래시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떤 아저씨가 바구니와 찬송가가 흘러나오는 라디오가 든 손수레를 엎드려서 끌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어떤 사람은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사실이 슬펐고, 지금 생각하면 그 모습을 굳이 눈앞에서 본 것이 억울하기도 했던 듯하다. 한번 시작된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아빠는 내 손을 잡고 길가로 가더니 “눈물이 무기가 될 수 없다” 하셨다. 아빠는 드물게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가 우는 건 자기 마음이 아파서일 거다. 저 사람에게 그건 별로 도움이 안 되지. 어떤 이유에건 누군가로 인해 마음이 아팠다면 자기 마음에만 빠지지 말고 작은 일이라도 뭔가를 해보는 건 어떻노?” 오래전 일이라 아빠가 해준 말이 어렴풋하다. 하지만 또렷한 기억 몇 가지가 있다. 유난히 엄격했던 아빠의 표정과 몸이 불편한 사람을 처음 본 나의 충격 그리고 아빠의 말을 듣고 용돈을 바구니에 넣었던 일.
아빠는 여전히 느릿하게 말씀하시고 나는 그게 가끔 답답하지만 아빠의 말투가 좋다. 나의 아빠는 느림보처럼 이야기하지만 내가 가닿지 못하는 지혜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러면 나는 아빠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당신이라고.
곽효정(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곽효정] 가장 존경하는 사람
입력 2015-05-06 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