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훈국제중 1학년 학생 23명이 지난주 인솔 교사와 함께 직업체험을 하러 서울 여의공원로에 위치한 국민일보 본사를 방문했다. 컴퓨터 조판 시스템(CTS)과 편집국을 둘러보고 마주한 학생들에게 30분간 전해줄 주제는 ‘신문산업’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주된 관심은 ‘산업’으로서의 신문이 아니었다. 신문의 보도 기능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에 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강남에 싱크홀이 발생하면 바로 인터넷에 기사가 뜨잖아요. 기자가 마침 현장에 있다가 알게 된 건가요?” “네팔 대지진같이 위험한 곳에서 취재하다 다치거나 사망하면 누가 보상하나요?” “오보를 내면 처벌받나요? 오보 낸 적 있나요?”
이런 정도는 중1다운 질문들이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답변했다. 다음 질문이 나오기 전까지는.
어떤 사건·사고가 났을 때 기자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텐데 어떻게 조정하느냐는, 꽤 수준 높은 질문이 먼저 들어왔다. 취재에서부터 기사 출고까지 여러 단계에서 기사를 취사선택하는 ‘게이트키핑(gatekeeping)’ 과정을 거치고 편집회의에서 최종 컨센서스(합의)를 이뤄간다고 설명했다. 바로 이때 “그럼, 낚시성 제목도 (편집)회의에서 결정하는 건가요?”라는 기습 질문이 나왔다.
학생에게는 “좋은 질문”이라고 격려했지만 내심 뜨끔했다. 순간 게이트키핑은 전통적인 신문에서 확립된 관행이지 신속한 보도(속보)를 우선시하는 인터넷신문은 좀 다르다고 했다. 인터넷신문들은 광고 수익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조회수를 노린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도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종이신문은 낚시성 제목과 무관한 것처럼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말았다. 이는 솔직하지 못한 답변이다. 아니, 반쪽 설명이다.
종이신문들도 신문용 기사와는 별도로 인터넷뉴스부서나 자회사를 두고 당국에 등록한 인터넷신문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도 독립적인 인터넷신문처럼 속보를 우선시하면서 낚시성 제목에 의존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단지 매체마다 낚시질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온라인 시대에 낚시성 제목과 쌍벽을 이루는 언론계의 이단이 바로 기사 어뷰징, 즉 동일 또는 유사한 제목과 기사를 반복 전송하는 행위다. 메이저라고 자처하는 종합일간지와 경제지들이 어뷰징에 더 몰입하고 있다는 점은 본 칼럼을 통해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어린 학생들이 ‘특종’ ‘단독’ 표기 기사마저 일종의 낚시질로 인식하는 건 뼈아픈 대목이었다.
“인터넷에서 기사들마다 ‘특종’, ‘특종’ 하고 붙어 있던데 특종, 단독이 뭔가요? 법으로 걸러야 하는 것 아닌가요?” “뭐긴 뭐야, 다 낚시질이지.”
특종과 단독기사는 “자기(신문사)가 먼저 아는 것 여러분에게 자랑하는 것”이라고 농담조로 설명하고 어물쩍 넘어갔다.
하지만 돌이켜볼수록 ‘특종과 단독기사 남발도 낚시질’이라는 아이들의 지적을 빈말로 흘려보낼 일이 아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숨지기 직전 그와 통화했던 신문이 연일 단독 보도하다가 어느 날 저녁 초판 신문 PDF를 공개하지 않고 막은 일이 있었다. 이 때문에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유예)란 키워드가 다음날 오전까지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그날 낮 동안 사람들의 주목도를 최대한 끌어올려 재미를 톡톡히 본 셈이다. 그날 저녁엔 JTBC가 이 신문의 성완종 인터뷰 녹취 파일을 입수해 먼저 공개했고 뒤통수 맞은 이 신문은 ‘절도사건’이라고 발끈했다. 따지고 보면 피장파장, 트래픽을 노린 마케팅 전략에 다름 아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특종과 단독을 낚시질로 보고 있다. 참담한 일이다.
정재호 편집국 부국장 jhjung@kmib.co.kr
[돋을새김-정재호] 중1 학생 눈에 비친 한국신문
입력 2015-05-05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