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네팔 가족들은 천막서 지낸다는데… 일자리 두고 갈 수도 없어” 발만 동동

입력 2015-05-05 02:45
지난 3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네팔 지진 희생자 추모분향소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심희정 기자

“네팔에 가서 부모님 만나고 싶어요. 집이 다 무너져서 도와줘야 하는데 방법이 없네요.”

충북 청주의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근무하는 네팔인 라젠드라 고텀(24)씨는 지난달 25일 발생한 네팔 강진으로 다딩에 살던 할머니(80)를 잃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집은 잔해만 남기고 무너졌다. 고텀씨는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가족들이 무너진 집 앞에 천막을 치고 지낸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도 보고 싶고, 가족도 계속 오라고 하지만 여기 일자리를 두고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고텀씨는 2012년 5월 한국에 왔다. 최근 두 달간 직업이 없다가 지난달 말에 겨우 지금의 직장을 구했다. 수중에 있는 돈은 지난달 일주일간 일해 받은 40만원뿐이다. 그는 “힘들게 구한 일자리라 회사에는 휴가 얘기를 꺼내기가 어렵다”며 “회사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하니 일단 ‘알겠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말했다.

인천의 도금업체에서 일하는 네팔인 아민 구룽(34)씨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지진은 고르카에 살던 할아버지(84)의 생명을 앗아갔다. 카트만두의 아내 삼자나(29)씨와 아들 샤빈(10)은 집이 무너져 인근 사찰에 머물고 있다. 구룽씨는 “아내와 아들이 지난 일주일간 라면과 물만 먹고 지냈다고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지진 소식을 듣고 네팔에 가고 싶다고 회사에 말했지만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다. 구룽씨는 “회사에서 네팔인 직원 4명에게 피해를 얼마나 입었냐고 물었고, 휴가를 보낼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며 “빨리 가고 싶은데 시간이 계속 흘러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해외거주네팔인협회(NRNA) 케이피 시토울라(47) 한국대표는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인이 현지에 못 가는 가장 큰 이유는 회사에서 휴가를 안 주거나 짧게 주기 때문”이라며 “회사 눈치를 보느라 휴가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비싼 항공료도 걸림돌이다. 매월 150만원을 받는 구룽씨에게 100만∼120만원에 이르는 왕복 항공권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시토울라씨는 “한번 네팔에 다녀오려면 많은 비용이 들어 결정하기가 어렵다”며 “다른 나라에선 지진 피해가족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휴가나 항공권 등을 지원해주기도 한다더라”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2만900명가량의 네팔인이 7000여개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각 지방노동관서에 ‘사업주는 귀국을 원하는 네팔인 근로자가 있으면 협조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애타는 마음은 추모의 발걸음으로 이어졌다. 3일 하루였지만 서울광장에 차려진 지진 희생자 추모분향소에 많은 사람이 찾았다. 분향소에는 ‘힘내세요’ ‘네팔 사람들이 부디 무사하길 기도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네팔의 아픔을 함께합니다’라는 현수막 옆에는 네팔인 니라즈(34)씨가 ‘네팔을 위해 기도해주세요(Pray for Nepal)’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방문객을 맞이했다. 그는 “많은 한국인이 관심을 가져줘 감사하다”고 했다. 아이 3명의 손을 잡고 분향소를 찾은 한초롱(33·여)씨는 “네팔의 상처가 빨리 아물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양민철 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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