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졸속 개혁] 반쪽 개혁에 ‘월권’까지… 속으로 부글부글

입력 2015-05-04 02:33
여야의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 내용을 둘러싼 청와대와 정부 기류가 심상치 않다. 청와대는 3일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사항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낼 게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 합의 부분에 대해선 내부적으로는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란 말이냐” “(야당에) 속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명시적으로 정치권에 대해 ‘월권행위’라고 지적했고, 공무원연금 개혁 취지가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팽배하다.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이 분명한 우려의 뜻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전달할 만큼 불편한 심기다. 공식적으로 반대를 하거나 논평을 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 모양새다.

청와대 내부에선 특히 국회 공무원연금개혁 실무기구가 공적연금 강화에도 의견을 모으면서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을 인상하자고 합의한 부분에 대해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의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은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인데 이런 사안을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고 합의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실무기구가 국민연금을 논의할 권한이 없는데도 국민 부담으로 직결되는 부분을 합의했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도 “국민연금 부분에 대해 (부담이 더 갈 수 있는)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하느냐”고 말했다.

조 수석은 공무원연금 개혁 최종 합의를 위한 여야 대표 회동에 앞서 이 부분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취지와 우려를 함께 전달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2일 여야의 최종 합의에 앞서 국회로 김 대표를 찾아가 강력 항의했다. 이 때문에 합의문 서명은 한 시간가량 지연됐다. 김 대표는 기자들에게 “복지부 장관이 와서 방방 뛰다 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특히 공무원연금 개혁안 자체에 대해서도 염두에 뒀던 개혁 취지에 훨씬 못 미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는 여야가 국민연금 부분을 거론하면서 더욱 고조됐다. 올해 초 연말정산 환급 파동에서 보듯 ‘국민 추가 부담’은 청와대로선 노이로제가 걸릴 만큼 민감한 사안이다. 국민에게 연금보험료를 더 걷거나 재정을 추가 투입하는 상황은 막아야 하는데, 국회가 나서서 이 부분을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도 여야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이기로 합의한 데 대해 “주무 부처가 아니어서 말하기 조심스럽다”면서도 “국민연금의 대상은 국민이고, 국민의 의사 또는 합의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측면에서 담당 부처(보건복지부)의 반발이 거셌던 것 같다”고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주 공식 일정을 재개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사항에 대해 비판적 메시지를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이 문제와 관련해 정치권의 결단과 공무원사회의 이해를 당부해온 만큼 현재 합의안이 개혁 취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밝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당청 또는 청와대와 정치권 간 또 한 번의 갈등 점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