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전신) 내에서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 회자됐다. 50대 이상 유권자의 증가와 영호남 유권자 수의 불균형 심화로 우리나라 정치지형이 보수화되고 있어 여당엔 유리하고, 야당엔 불리한 구도라는 논리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논점을 흐리게 하는 위험한 주장이다. 대선에서 진 쪽에선 왜 민심을 얻지 못했는지, 민심이 왜 당을 외면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자성(自省)과 정확한 진단이 우선돼야 한다. 그럼에도 “운동장이 기울어졌기 때문”이라며 환경 탓으로 대선 패배의 책임을 전가하는 건 꼼수다.
더욱이 ‘기울어진 운동장론’은 오래됐다. 1990년 1월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YS의 통일민주당, JP의 신민주공화당이 합쳐 민주자유당이라는 거대 여당을 탄생시킨 이른바 ‘3당 합당’이 그 출발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종종 사용했다. 이를 마치 새로운 현상인 양 꺼내든 점도 책임회피용이라는 시각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정치지형으로 볼 때 이길 수 없는 선거에서 졌기 때문에 책임질 게 없다”는 주장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대선패배의 충격으로 민주당 전체가 극심한 심리적 불안상태에 빠졌던 것과도 배치된다.
4·29재보선 이후 새정치연합 일각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거기에다 ‘야권 분열’이 추가됐다. 야권 후보가 난립하는 바람에 참패했다고 말한다. 이 역시 옳은 면이 있지만 올바른 자세는 아니다. 4개 선거구별 후보자 득표율을 들여다보면 서울 관악을 한 곳만 여당이 야권 분열의 덕을 봤을 뿐 경기 성남중원과 인천 서·강화을은 새정치연합 후보와 무소속 또는 정의당 후보 득표율을 합쳐도 새누리당 후보에 10% 포인트 정도 뒤진다. 광주서을에서 새정치연합 후보가 무소속 천정배 후보에게 20% 포인트 이상 진 이유 역시 야권 분열로는 설명이 안 된다. 성완종 파문으로 ‘이겨야 하는 선거’에서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음에도 민의를 외면하려는 무책임한 모습이다.
새정치연합은 18대 대선과 그 이후 치러진 4차례의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연패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와중에 치러진 7·30재보선에서도 졌다. 그럼에도 자기합리화와 변명을 반복하고 있다. 비겁한 처사다. 지금부터라도 당의 어떤 면들이 국민들로부터 눈총을 받는지 정확하게 파악해 하나하나 혁파해 나가는 게 정도(正道)다. 분파주의를 비롯한 내부의 만성 질환을 고쳐나가는 데 매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지지층을 투표소로 이끌 수 있다. 아울러 외부 환경 타령을 멈추고, 50대 이상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정책 수립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2013년 4월, 민주당 대선평가위원회는 백서를 발간하려 했다. 대선에서 왜 패했는지, 향후 대책은 무엇인지 등을 신랄하게 담은 백서였다. 문재인 후보와 한명숙·이해찬 전 대표 등에 대한 ‘실명 비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선의 전면에 섰던 친노(親盧)가 “감정적인 보고서”라고 거세게 반발하는 바람에 백서는 출간되지 못했다.
새정치연합이 잇달아 고배를 마시는 근본 원인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2년 전, 대선 백서를 토대로 치열하게 내부 격론을 벌인 뒤 대안정당으로의 변화를 꾸준히 추구했더라면 이 정도로 망가지지는 않았을 듯하다. 선거에 매번 지고서도 반성할 줄 모르는 정당, 쇄신할 줄 모르는 정당에 선뜻 표를 줄 유권자는 거의 없다. 새정치연합 자체가 한참 기울어져 있는 상태다. ‘운동장’보다 더 심각하다. 그래서 새정치연합의 내년 총선 기상도는 ‘잔뜩 흐림’이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김진홍 칼럼] 이제라도 ‘2012 대선백서’ 발간을
입력 2015-05-04 00:57